사진<묵향>님의 블로그에서
홀씨가 혼을 데려간다 / 정우영
가까스로 컴퓨터에서 빠져나와 막 쉬고 있을 때
창문 틈새를 비집고 네가 날아든다.
너는 내 몸 여기저기 슬쩍슬쩍 간질이며 돌아다닌다.
나는 몸을 떨어 너를 덜어내려 하나,
너는 뿌리 내릴 자릴 찾는지 자못 집요하다.
아직 내 몸에다가 널 키우고 다닐 정도로 외롭진 않았으므로
호- 불어 너를 창문 너머로 날려 보낸다.
네가 편히 살 곳 찾아 뿌리내리라는 뜻이었으나
너는 쉬이 날아가지 않고 자꾸만 내 손목에 매달린다.
난 긴 숨 토해내 기어이 창문 너머로 너를 돌려보낸다.
너는 그래도 미련 남은 듯 유리창 주위를 안타까이 떠다니다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이끌려 호르르 사라져간다.
나는 네가 내려앉으려 한 손목 가만히 내려다보다 자판 두드린다.
오래 쉰 것 같다, 다시 컴퓨터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는 열심히 자판 두드리는데 모니터가 열리지 않는다.
놀라 살펴보니 손가락이 다 빈껍데기이다.
어디 손가락뿐인가, 모니터에 비치는 내 몸이 다 헛것이다.
너와 함께 나도 창문 너머로 날아가 버린 것인가.
이제 나는 어떻게 우리 세상으로 돌아가나?
언제 돌아올지 모를 나를 기다리며
날개 잃은 헛것이 컴퓨터 앞에서 발 동동거리고 있다.
정우영
1989년 <민중시>로 등단.
시집 <집이 떠나갔다> 등이 있음.
'문예지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경도 / 이동호 (0) | 2009.01.15 |
---|---|
링반데룽* / 이혜미 (0) | 2009.01.12 |
돌젖 / 정우영 (0) | 2009.01.09 |
캔, 또는 can / 마경덕 (0) | 2009.01.08 |
돌꽃 / 마경덕 (0) | 2009.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