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 김충규

자크라캉 2008. 11. 25. 11:00

 

 

사진<달긷는汲月堂>님의 카페에서

 

[제1회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작]

 

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 김충규


어두운 낯빛으로 바라보면 물의 빛도 어두워 보였다
물고기들이 연신 지느러미를 흔들어대는 것은

어둠에 물들기를 거부하는 몸짓이 아닐까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에 취하지 않는 물고기들,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몰골은 어떻게 보일까
무작정 소나기 떼가 왔다
온몸이 부드러운 볼펜심 같은 소나기가

위에 써대는 문장을 물고기들이 읽고 있었다
이해한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그들의 교감을 나는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살면서 얻은 작은 고통들을 과장하는 동안
내 내부의 강은 점점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르렀다
살면서 얻은 작은 고통들을 과장하는 동안

내 내부의 강은 점점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풍성하던 魚族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후로 내 문장엔 물기가 사라졌다

물을 찾아온다고 물기가 절로 오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물이 잔뜩 오른 나무들이 그 물기를 싱싱한 잎으로
표현하며 물 위에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나를 부끄럽게 했다
물을 찾아와 내 몸이 조금이나마 순해지면
내 문장에도 차츰 물기가 오르지 않을까
차츰 환해지지 않을까

 

내 몸의 군데군데 비늘 떨어져나간 자리

욱신거렸다

이 몸으로는 저 물 속에 들어가 헤엄칠 수 없다

 

 

[김충규 시인]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1998년 문학동네 문예공모 시 당선 
 -제1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제2시집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2006년  <물 위에 찍힌 발자국> 실천문학
 -현재 문학의전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