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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고리 / 김후자
남자가 지하철에서 휴대용 접착고리를 판다
쉴 새 없이 상품을 선전하는 남자
스티커에 붙은 도금한 고리가 3kg 철근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리고 다시 이를 앙다문 고리가 5kg을 들어올린다
제 덩치보다 몇 백 배 많은 쇳덩이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하루를 지탱하고 있다
남자가 고리에게 눈을 찡끗 감는다
고리는 펑퍼짐한 아줌마 서넛을 들어올린다
졸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깨어났다
남자가 신이 났다
고리가 있는 힘을 다해 지하철을 통째로 들어올리려 한다
절대 과부하가 없는 저 고리
남자의 생(生)도 번쩍 들어올릴 것 같은
견고하고 단단한 저 고리
좀처럼 끄떡없을 그 무엇도 번쩍 들어올릴
남자에겐 고리가 있다
남자가 구름 손잡이에 팔을 올린다
고리가 척 걸린다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열한 분의 시들은 대체로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는 무관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고 정직한 사유를 펼쳐 보인다. 그만큼 노동현실과 노동자의 삶의 조건이 사회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큰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소외된 현실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사회적 책임감과 의지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감각마저 현실의 중압감에 짓눌려서 고정되고 평균적인 시각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시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 주목해 주었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은 것 가운데 변화를 읽어내고, 누구나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할 때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 할 줄 알고, 집단 속에 숨어서 소리칠 것이 아니라 벌거벗고 나와 세계와 정면으로 대면하거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온갖 풍상을 감내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직하지만 개성이 부족한 시들을 읽으며 즐거움과 동시에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다시 읽고 나서도 두세 분의 원고를 읽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돋보이는 시들이 있어 우리를 긴장시켰다.
김후자 씨의 시들은 얼핏보면 피상적이고 사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시적 대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깊은 사유 없이 이룰 수 없는 작품들이다. 절제된 언어와 세련된 표현력 역시 적지 않은 습작에 의한 성취로 보인다. 당선작 가운데 ‘고리’는 자본주의 상품에 대한 쾌락적 추종이 만병통치약처럼 허무맹랑한 확신을 낳게 하고, 나아가 인간의 삶을 강박적으로 의탁해 버리게 하는 물신화된 현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그밖의 시들도 고른 완성도를 보여준다.
최일걸 씨의 ‘김밥말이 골목’은 비상구 없는 봉제공장 다국적 노동자의 일상을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공장이 밀집한 골목(닫힌 세계)과 목구멍(목숨)과 김밥(일용할 최소한의 양식)이 한 지점에서 만나 서로를 비추며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유폐된 노동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밖의 시들은 긴장이 떨어지고 현실비약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두 분에게 새로운 세대, 새로운 노동시를 열어갈 전위의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심 심사위원 : 이한주, 맹문재
본심 심사위원 : 백무산, 최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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