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모락산 산새>님의 블로그에서
[ 2008년 제2회 해양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품]
출항 Ⅱ 외 3편 / 김 영
내 오늘, 이 바다를 가르리라
포세이돈의 도끼날로 선
무쇠 용골의 번쩍이는 선수(船首)를
저 견고한 해면 위에 내리찍으면
쩌엉 하고
바다가 갈라지리라
닻을 올려라, 윈치를 감아라
브리지에 올라 자이로컴퍼스를
동트는 바다 쪽에 맞추어라
길었던 불면의 밤은 이제 끝났다
마스트 꼭대기에 태극 깃발 휘날리느냐
엔진에 시동을 걸고 가속레버를 힘껏 당겨라
전속으로 전속으로
불타오르는 한 바다로 달려가자
폭풍우도 황천(荒天)도
결코 우리의 항로를 막진 못하리라
마스트에 올라 수평선을 주시하라
갈매기의 군무가 보이느냐
지피에스와 어탐을 켜라
다랑어, 참고래의 떼 울음소리 들리느냐
멘더레일이다, 젊음이여
모두 갑판으로 올라
수평선의 일출을 향하여 도열하라
오늘, 갈라놓은 이 바다 끝에
아틀란티스의 웅장한 석조기둥이
두 팔 벌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해안선(海岸線) I
-태안에서
올려부친 따귀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바위는 그렇게 부서져 조금씩 모래가 돼가고
푸른 치맛자락이
실성한 여인네의 속곳처럼
마파람에 뒤집어지면
속절없는 해안은 게거품을 물었다.
누가 고생대의 원혼을 가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가
타오르지 못한 목신(木神)의 타르는
역한 저주의 내음을 사방으로 뿌리고
생성과 소멸의 경계에
검은 상포(喪布)자락을 불도장으로 새겼다.
무리지어 속죄하는 뒤늦은 걸음들이
푸른 바다를 힘겹게 밀어내면
검게 신음하며 드러나는 아픈 속살들
토닥이며 달래어 보는 서글픈 염원은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 바다인 너, 스스로 푸르른 너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등껍질을 닦아내는 고단한 시간
바다를 건너는 법을 모르는
어지러운 발자국들은 모두 되돌아가고
-입수금지(入水禁止)-
주검의 현장에 쳐진 검은 폴리스라인 아래로
뭍은 물을 더 깊이 만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이미 처참한 비명만 가득했다.
해안선(海岸線) Ⅱ
- 이명(耳鳴)
광희동 꼭대기 옥탑방 구석에서도
눈 감으면 밤마다
바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름 한밤 아비는
바다가 우는소리에 놀라 폭풍우가 몰려 온다며
빗속을 뛰어나가 전마선에 올라탔단다
바다울음 주린 승냥이 이빨처럼 가까울 때
가랑잎 같은 고물에 붙어 아비는
혼신을 다해 노 저었겠지
부황 든 아내와 새끼들 생각하면
얼굴 하나하나
빗방울에 맺혀 어른거렸겠지
그러다가 폭풍우에 휘둘려 노 부러지고
삿대 허공에 치대며 소리 질렀겠지
하지만 그 소리 포구에 이르지 못하고
언덕에서 처자식이 부르는 소리도
그 배에 이르지 못하고
안타까운 소리들 허공에서 길 잃었겠지
그 밤에
바람 무지 불었단다
파도 엄청 높았단다
조가비들 천공(穿孔) 사이사이에서
명줄 빠져나가는 소리
끝없이 들렸단다
아침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고요하고
바닷가에는 구멍 뚫린 조개껍데기 수북이 밀려와
물과 뭍의 치열한 영토의 경계에
금 그리고 있더란다
이 밤, 바다 울음소리가 서늘하다
성난 파도는 또 얼마나 많은 서울의 조가비들을
시구문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우우
밤새 명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안선(海岸線) Ⅲ
-시놉시스
1.
대천바다에 눈 내리더라
저물고 바람 부는
인적 끊긴 바닷가에서 물결은
등 돌려 가던 누이의
머리카락처럼 헝클어졌는데
2.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시오리 모래밭에 찍힌 발자국을 세고 있었지
술에 취한 발자국
가슴 패인 발자국
길 잃은 발자국
길 아닌 곳에 길을 만든 발자국
발자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래들은
더 잘게 부수어지고
3.
여기가 끝이라고
땅의 끝이라고, 물의 끝이라고, 인연의 끝이라고
물과 뭍은
서로를 놓지 못하는데 그 경계에
송이송이 함박눈 내리더라
같은 하늘에서 뛰어내린 눈들이
물에서는 스스로 죽고
땅에만 수북하여
그 선이 죽음과 삶을 가르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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