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평 신곡을 사랑하는 사람들>님의 카페에서
흰곰 / 김영식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북극에 산다는 흰곰의 허기진 울음 같은,
냉기 자욱한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러나 백야의 툰드라 속으로 순록들이 눈썰매를 끌고 가거나 레밍을 움켜쥔 흰올빼미만 날아오를 뿐,
곰이 살고 있으리라는 짐작은 진즉부터 했었지만 고등어와 쇠고기, 버섯과 양파가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이스크림이나 땅콩까지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누가 먹어치우지 않고서야 그 많은 음식들이 어떻게 부지불식간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놈을 사냥하려 엽총을 메고 날마다 침엽수 우거진 길목을 지켰지만 그때마다 붉은 여우떼만 꼬릴 흔들며 지나갈 뿐,
한번은 열린 냉장고 문밖으로 빙하가 녹아내린 적이 있었다 그때 삐걱거리는 남루 사이로 빠져나온 이 거대한 포식자는 밤새 배가 고파 식탁 아래며 주방을 배회했는지 크고 둔중한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인데,
그 이후론 놈의 기척을 좀체 볼 수 없었지만 250ℓ에서 500ℓ로 다시 800ℓ로 胃만 커지는, 저 아귀 같은 속엔 날마다 내 가계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주린 맹수가 살고 있을 것이다 모르지 그 곰이 새끼를 낳아 이젠 제법 一家를 이루었는지도
2008년『현대시학』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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