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사냥감을 찾아서 / 안차애

자크라캉 2008. 3. 18. 10:51

 

사진<첫사랑 이별 외로움>님의 블로그에서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냥감을 찾아서 / 안차애

 

1

 

 배꼽에서 비스듬히 3cm 위쪽 지점을 깊이 맞뚫어

 피어싱(piercing)*한다

 생각보다 많은 출혈량은 있었지만

 멧돼지 어금니 모양의 둥근 개를 마주 꽂아

 기쁨을 장식한다

 바야흐로 성인식이다

 어제는 들소 모양 장신구를

 그제는 사슴의 목뼈 모양 링을

 며칠 전엔 상아 모양 고깔을

 미간에 귓바퀴에 귓불과 입술에 바짝 매달았다

 비로소 야생 동물의 더운 피가 쿵쾅거리며 몸을 뛰어다니고

 

 2

 

 사냥감이야 지천이다

 혼다 4기통 오토바이로 시속 100km 남짓 달리다 보면

 알타미라 동굴 근처의 바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지중해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악을 쓰다 느닷없이

 오호츠크해산 고래 마리가 친구 속에서 튀어나오는

 깔깔대며 잡기도 한다

 취향이야 바뀌기도 하므로,

 오늘밤엔 늙은 아버지의 가슴 밑에 숨어사는

 느린 곰의 촌스러운 진지함을 새삼 사로잡아

 혓바닥에 박고 싶다, 아주 가학적으로

 

[감상]

시대를 풍자하는 한편이 새롭고 힘차다. 피어싱을 즐기며 시속 100Km 속도를 즐기는 폭주족들. 바람까지 잡을 있는 위험한 젊음, 살을 뚫으며 자학하는 빗나간 젊음이 파괴적인 힘을 가졌다. 안정된 작품보다는 틀을 깨뜨리고 가슴을 뛰게 하는 도전정신이 심사위원의 눈길을 붙잡았다. 규격에 맞춘 비슷비슷한 시들은 선택받지 못한다. 지루하고 평범한 것들은 평범에서 그친다. 좋은 소재가 좋은 시를 낳는다. 신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싱싱함이다. 엉뚱한 상상력과 새로운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