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똘배의 산정무한>님의 블로그에서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 / 천수호
도랑을 한 번 쭉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놈이 살고 있는지
흙탕물로 곤두박질치는 鰍
그 꼬리를 기억하며 網을 갖다댄다
다리를 휘이휘이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송사리 추, 잉어 추, 쏘가리 추
발끝으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면
잘못 걸려드는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멩이들
어차피 속뜻 모르는 놈 찾는 일이다
온 도랑 술렁인 뒤 건져 올린
비린내 묻은 추(秋)는 가랑잎처럼 떨구고
비슷한 꼬리의 (송사리)추, (잉어)추, (쏘가리)추만
자꾸 잡아 올린다.
(송사리추, 잉어추, 쏘가리추는 원래 한문 글자로 표기해야 하나 컴퓨터 한자의 제한으로 한글로 대치함)
[감상]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심사위원의 안목이다. 다소 위험 부담이 가는 엉뚱한 상상력도 숨겨진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를 찾다보니 비슷한 송사리 잉어 쏘가리 추만 자꾸 눈에 잡힌다. 다리를 휘이휘이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사이로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멩이들까지 걸려 올라온다. 옥편은 뜻 모를 글자들이 모여 사는 도랑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가? 바지를 걷어붙이고 함께 그 도랑으로 들어가 미꾸라지를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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