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200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의자 / 김성용

자크라캉 2008. 3. 18. 14:19

 

사진<건축...-가구의자>님의 블로그에서

 

[200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김성용

 

 

극장에 사무실에 학교에 어디에 어디에 있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달린 짐승이다 얼굴은 없고 아가리에 발만 달린 의자는

흉측한 짐승이다 어둠에 몸을 숨길 아는 감각과

햇빛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용맹을 지니고 온종일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먹이가 앉기만을 기다리는

의자는 필시 맹수의 조건을 두루 갖춘 달린 짐승이다

짐승에게는 권태도 없고 죽음도 없다 아니 죽음은 있다

안락한 죽음 편안한 죽음만 있다

먹이들은 자신들의 엉덩이가 깨물린 줄도 모르고

편안히 앉았다가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붙잡은 먹이는 좀체 놓아주려 하지 않는 근성을 먹이들은 모른다.

이빨자국이 아무리 선명해도 살이 짓이겨져도 없다

짐승은 혼자 있다고 해서 절대로 외로워하는 법도 없다

떼를 지어 있어도 절대 떠들지 않는다 오직 먹이가 앉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곤 편안히 마비된다 서서히 안락사 한다

제발 앉아 달라고 제발 혼자 앉아 달라고 호소하지도 않는 의자는

누구보다 안락한 죽음만을 사랑하는 달린 짐승이다

 

 [감상]

 의자를 달린 짐승으로 시선이 낯설고 새롭다. 의자를 사나운 맹수로 몰고 가는데 무리가 없다. 다소 거칠긴 하지만 고정관념을 탈피한 패기 넘치는 작품이다. 독자를 설득할 있는 상상력이 시의 힘이다. 독자를 무시한 독선적 발언은 위험하다. 보편성을 잃은 상상력은 독자와의 소통을 거부한다.

  2000년도에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 공통점은 동물을 비유해 작품이 쓰여졌다는 것이다. 김성용은「의자」를 맹수로 박성우는 목을 매달고 죽은 사내를「거미」에 비유하였다. 이승수는 전동차를「고래」로 정진경은 가죽 핸드백에서 소울음 소리를 듣는다. 이렇듯 상상의 힘으로 시의 폭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