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반성 743 / 김영승

자크라캉 2007. 12. 17. 11:55

 

                      사진<프로방스집꾸미기>님의 카페에서

 

 

성 743 / 김영승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준

예쁜 소녀 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촛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 그래' '더우세요'

눈물 겹도록 착하세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왼쪽엔

타이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 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반성』이라는 연작시로 2006년 봄 현재까지 1,302편을 쓰고 중단한

    김영승 시인의『반성』743편째의 詩 작품이다

 

 

2006년 <시와 세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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