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노래 / 엄원태

자크라캉 2007. 12. 12. 12:30

 

                                                                 사진<사위카>님의 카페에서

 

/ 엄원태

 

가설 식당 그늘 늙은 개가 하는 일은

온종일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일

턱까지 땅에 대고 엎드려 가만히 듣고

심심한 듯 벌렁 드러누워 멀뚱멀뚱 듣는다

 

곡조의 애잔함 부스스 빠진 털에 다 배였다

희끗한 촉모 몇 올까지 마냥 젖었다

진작 목줄에서 놓여났지만, 어슬렁거릴 힘마저 없다

눈꼽 낀 눈자위 그렁그렁, 가을 저수지지 같다

 

별다른 할일 없는 주인아저씨의 일이란

줄기차게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대는 일

한결같은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 리바이벌

 

정작, 노래를 틀어대는 주인아저씨보다

곡조의 처연함 제 몸으로 다 받아들인 늙은 개가

저 여가수의 노래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뼛속까지 사무친다는 게 저런 것이다

저 개는 다음 어느 생에선가 필시 가수로 거듭날 게다

노래가 한 생애를 수술 바늘처럼 꿰뚫었다

 

 

2007 <문예중앙>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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