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뭐랄까 ~ cross over ...>님의 플래닛에서
혼잣말 /위선환
나는 더디고 햇살은 빨랐으므로 몇 해째나 가을은 나보다 먼저 저물었다
땅거미를 덮으며 어둠이 쌓이고 사람들은 돌아가 불을 켜서 내걸 무렵 나는 늦게 닿아서 두리번거리다 깜깜해졌던,
그렇게 깜깜해진 여러 해 뒤이므로
저문 길에 잠깐 젖던 가는 빗발과 젖은 흙을 베고 눕던 지푸라기 몇 낱과 가지 끝에서 빛나던 고추색 놀빛과 들녘 끝으로 끌려가던 물소리까지, 그것들은 지금쯤 어디 모여 있겠는가
그것들 아니고 무엇이 하늘의 푸른빛을 차고 깊게 했겠는가
하늘 아래로 걸어가는 길이 참 조용하다
사람의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더디게 오래 걸어서 이제야 닿는구나 목소리를 낮추어 혼잣말하듯이,
시집<새떼를 베끼다> 2007. 문지사
<약력>
시인 위선환은 1941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2001년 『현대시』 9월호에 시 「교외에서」 외 2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2001),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2003)가 있다.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봄비 / 박용래 (0) | 2007.10.31 |
---|---|
새떼를 베끼다/위선환 (0) | 2007.10.26 |
낙화, 첫사랑 / 김선우 (0) | 2007.10.22 |
정육점 여주인 / 진은영 (0) | 2007.10.16 |
가을 / 이승훈 (0) | 2007.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