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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아내` / 심은섭 시인

아내 심은섭 얼굴은 하얀 목련이지만 뒷모습은 사월 초파일이다 나와 함께 한 방향으로 기관총을 쏘는 총잡이다 내가 마른 강물로 흐를 때면 기우제를 지내주는 제사장이고 대기권을 이탈하는 유성을 바라보며 서로 슬픔을 수혈하기도 했다 때로는 통기타 1번 선의 C단조였다가 내가 어둠의 깃발로 펄럭일 때 푸른 새벽을 불러주었다 붉은 장미꽃이 지천으로 핀 5월이면 초병의 눈초리로 경계를 강화하지만 10월이 오면 어김없이 황금불상의 미소를 건네는 능금이다 오랜 생의 전투로 사기가 저하된 패잔병인줄로 알았으나 탄알이 장전된 38구경 6연발 권총 한 자루였다 단단한 몇 개의 고독이 실밥이 터진 나의 정신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할 때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군가를 불러주는 전우였다

나의 기사 2021.05.16

열 세 살의 셀파 / 심은섭 시인

열 세 살의 셀파 심은섭 히말라야산맥은 신의 발가락이다 그는 그 발가락에 도달해야 한 끼의 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30kg의 업을 지고 남체 바자르 3440km를 오른다 출생의 환희보다 빈 젖의 맛을 먼저 눈치 챈 열 세 살의 셀파, 산을 내려오는 하얀 얼굴의 황금빛 등산화와 발목에 맷돌을 매달은 것 같은 발걸음, 그것으로 산을 오르는 그의 고무슬리퍼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까닭을 알 수 없는 전생의 죄라도 씻어낼 요량으로 마니차*를 돌려본다 그의 손금으로 일몰이 몰려온다 어둠을 몰아낼 등잔 하나 없다 이를 위해 어떤 신神조차 고민하지 않는 세상을 지켜보던 개잎갈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이빨을 갈며 ‘고통이 고통에게 기대어 산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원통형 불교도구 -출처 : 2021년 《시산맥》 ..

나의 자작시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