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세 살의 셀파
심은섭
히말라야산맥은 신의 발가락이다 그는 그 발가락에 도달해야 한 끼의 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30kg의 업을 지고 남체 바자르 3440km를 오른다 출생의 환희보다 빈 젖의 맛을 먼저 눈치 챈 열 세 살의 셀파,
산을 내려오는 하얀 얼굴의 황금빛 등산화와 발목에 맷돌을 매달은 것 같은 발걸음, 그것으로 산을 오르는 그의 고무슬리퍼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까닭을 알 수 없는 전생의 죄라도 씻어낼 요량으로 마니차*를 돌려본다
그의 손금으로 일몰이 몰려온다 어둠을 몰아낼 등잔 하나 없다 이를 위해 어떤 신神조차 고민하지 않는 세상을 지켜보던 개잎갈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이빨을 갈며 ‘고통이 고통에게 기대어 산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원통형 불교도구
-출처 : 2021년 《시산맥》 여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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