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꽃게의 반복 - 심은섭

자크라캉 2021. 3. 6. 00:01

 

 

꽃게의 반복

 

 

 심은섭

 

 

그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브이다 입 안 가득 거품 물고 곱슬머리 같은 생을 풀어 보려고 허기의 상습범이 되기도 하고 190수로 악의 어망을 짜기도 했다

 

그의 족적 안에선 한 됫박 가량의 그믐달빛이 익어가는 중이고 서너 명의 반성이 둘러앉아 신약성서 마태복음을 푸른 통금의 사이렌소리로 암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렵, 내 손아귀로 쇳덩이 같은 비가悲歌들이 아우성치며 무리지어 몰려오고 철없는 겨울이 있는 이마에 어떤 계절 하나 찾아오지 않았다

 

초고속 인터넷 검색창에 ㅇㅓㅁㅁㅏㅇㅑㅇㅓㅁㅁㅏㅇㅑ라는 이름을 밀어 넣고 엔터키를 후려쳤다 지상에서 품절될 뭉게구름으로 제조 중이라는 팝업창이 떠올랐다

 

 

 

 

-출처 : 2021년 《심상》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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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노트]

 

 

   인간은 늘 그리움을 비우기 위해 산다.

 

 

 

   우리들은 늘 무엇이든 그리워하며 산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정신의 곳간에 그리움이 만월처럼 차오른다는 것이다. 사람은 차오르는 그리움을 비워야만 살 수가 있다. 그리움을 비우지 못할 경우 일차적으로 눈물을 흘리지만 더 심해지면 홧병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정신질환까지 다가갈 수 있다. 그럼으로 그리움이란 반드시 비워야만 하는 전제조건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움을 비우는 방법에는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그리운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이다. 그러나 전화 한 통으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그리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만날 수 없는 대상이 있다. 후자의 그리운 사람은 죽음으로 이 세상과 이별을 한 사람이다. 이런 대상에 대한 그리움은 죽음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의 안타까운 노을빛 그리움을 동반한다.

   전자의 경우처럼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그리움이 비워진다는 것이다. 그리움이 비워진다는 것은 언젠가 채워야할 때가 또 온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움을 채우고, 그리움을 비우는 반복적인 행위가 우리들의 삶이다. 그리움으로 마음속에 남지 않을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일이 최고의 상책이다. 이것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무엇 하나 쉬운 게 하나 없다.

   쇠똥구리가 말없이 경단을 빚듯이 시를 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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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섭  시인

심은섭 약력

 

·2004년 『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8 시와세계에서 평론 당선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19) 

·저서 한국 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외 다수

·1 5.18문학상 수상, 6 세종문화예술대상 외 다수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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