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2
심은섭
한 통의 e-mail이 왔습니다
막차로 떠난 가을이 잘 도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PC를 끄고 이제 막 자려고 하는데 누가 다급하게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얼굴이 샛노란 잔추가 당황한 낯빛으로 비수를 든 겨울이 쫓아온다고 말했습니다 황급히 방으로 피신시켰습니다 군홧발의 12월이 나를 밀치고 금세 방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잔추와 들소처럼 싸웠습니다 겨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10월의 카렌다가 잘려나갔습니다 온 대지는 하얀 상복을 갈아입고 대성통곡을 하였고, 강물은 스스로 이마를 쩌억 갈랐습니다 둘을 불러놓고 화해를 시도했으나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내를 불렀습니다
보일러를 돌리라고 했습니다 모두 사월이 되었습니다
-출처 : 2021년 《심상》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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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섭 약력
·2004년 『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8년 『시와세계』에서 평론 당선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19) 외
·저서 『한국 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외 다수
·제1회 〈5.18문학상〉 수상, 제6회 〈세종문화예술대상〉 외 다수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양과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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