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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 심은섭

반구대 암각화 심은섭 여기는 제작연대 미상의 카페입니다 신분제도가 없어 회원이 꽤나 됩니다 월회비는 한 덩어리의 뭉게구름이고, 가입비는 한 접시 바람일 뿐, 누구나 ID가 ‘원시인’인 것은 설립자의 유언으로 양해바랍니다 절벽에 새겨진 호랑이가 암벽등반대회 참가 중이라는 ‘댓글’을 달지 마세요 이미 정신이 실종된 빈 가죽일 뿐입니다 방명록엔 누구든 가을빛 눈물 한 방울쯤 떨어뜨릴 수는 있어도, 암벽의 흰수염고래 가죽을 ‘복사’해서는 안됩니다 들소의 아마포 찢는 듯한 울음소리는 한 움큼만 퍼 가세요 눈을 감지 못한 물개가죽을 다른 곳으로 ‘붙여넣기’해서도 곤란합니다 바다거북이가 궁서체로 쓴 편지는 지금도 전송 중이므로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불허합니다 그 까닭은 그들의 영혼을 비는 주술사의 제의가 아직도 ..

나의 자작시 2021.11.09

몽환의 기우 - 심은섭

몽환의 기우 심은섭 1. 달 둥근 시간이 귀향을 꿈꾸며 방점을 찍어 놓은 표식이고, 갈증의 뒤편에서 죽음의 시점을 기억하는 접시꽃의 만개다 어쩌면 종부성사를 받은 환자의 마지막 알약이다 때론 망각의 강을 건너갈 비행접시다. 하지만 석공이 새기고 있는 비문의 주인공이다 2. 돌 자물쇠로 입술을 굳게 잠근 독락당이며, 머리를 삭발한 목어가 즐겨먹던 물렁한 견과류다 아니다 계시의 일정을 잊어버린 신들의 은신처다 혹은, 궁핍의 얼굴이 피멍을 어루만지며 찾아간 암자다 그의 몸속에 푸른 사리가 자란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3. 탈 그 영토 안에는 비가 오는 겨울, 혹은 눈 내리는 봄의 공존이다 얼굴을 숨길 때마다 탈이 났다 그러므로 사립탐정이 새벽마다 찾아와 발문수를 재어 갔다 하지만 어떤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

나의 자작시 202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