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해와>님의 플래닛에서
그늘값 / 이규리
해운대 비치파라솔 한 채 오천 원
멀리서 보면
멜라민 비빔밥 그릇들 엎어놓은 것 같지만
어쨌든 그늘값이다
오천 원 안으로 달짝지근한 몸뚱이들
슬슬 비벼지기도 하는,
그늘을 샀다지만 거기 무슨 경계가 있나
변덕스런 월세방 주인처럼
자꾸 자릴 옮겨 앉는 감질나는 그늘
깐죽거리는 햇살 따라가 보면
그늘은 파라솔 밖에 있거나 없거나
이 참에 달아오른 몸들도 물 속에 있거나 없거나
그늘은 그늘 아닌 데다가 그늘을 만든다
만질 수도 없는데 밀고 당기는 힘들.
마음 그늘엔 누가 자릴 차지하고 있나
접었다 폈다 하는 파라솔이 아니면
그늘은 원래 없었던 것
마음이란 것도 원래 없었던 것
그늘이 제 이름을 버리는 밤과 새벽이 있듯이
마음이나 그늘이나 오천 원이나
자기도 모르게
접힌 바짓단에 숨어든 모래처럼
그렇게 들고 나는 것
시집 <뒷모습> 2006년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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