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2006년 서울 史記 / 서안나

자크라캉 2006. 8. 20. 17:27
 

 

                                                                                  

                                   사진<가을동화>님의 블로그에서

 

2006년 서울 史記 / 서안나

 

2006년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혜성이 잠시 나타났다 동남쪽으로 사라졌다

새로 왕이 된 자가 친히 시조 묘에 제사를 지내고 궁을 새로 증축했다

궁 서쪽 숲에 가슴은 없고 커다란 머리통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났다

왕이 친히 그 아이들을 왕궁으로 데려와 길렀다고 저녁 9시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정월 사 일에 날아가던 새가 허공에서 해를 삼켜버렸다

정월 십오 일에 조정 간신들에게 뇌물을 받친 이가 잡혔으나

일체 범행을 부인하였으며 수사가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들었다

백성들이 신문고를 울리며 그를 벌주라고 상소를 올렸다

정월 십육 일에 왕이 친히 지방을 순행하여

전답과 가옥의 값을 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이 말을 실천에 옮기지 아니하였다

가옥의 가격이 치솟고 굶고 병들어 죽는 자들이 많았으며

길가를 유랑하며 노숙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창고를 풀어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으나

노인을 길거리에 내다 버리고 약탈과 도둑이 성행하였다

궁 남쪽 연못에서 하얀 잉어가 길게 세 번 울었다.

눈이 다섯 자나 쌓였으며 곡식들이 얼어 죽었다

정월 십칠 일에 왕이 신하들에게 시정에 떠도는 노래들을 옮겨 적으라 명했다

거짓말만 잘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일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 조정에서 9시간 동안 논의가 있었다

참다못한 젊은이들이 궁궐 앞에 모여 성토를 했고, 몇은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백성들이 많았다

발 빠르고 민첩한 자들이 가옥들을 다 점령하여 수도 경성을 다 접수했다

술 취한 조정 공신들이 향기로운 술과 기름진 고기를 쌓아놓고

밤마다 기생들과 노래를 불렀다

여자와 남자를 가리지 않고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고

얼굴에 붉은 화장을 하는 풍속이 나라 안팎에 퍼져 나갔다

정월 이십오일 궁 서쪽에서 용이 출현했다

동서남북 문마다 배곯은 여자들이 아이들을 안고

길거리로 나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흘리며 회심곡을 불렀다

배고픈 아이들이 어미젖을 빨기 위해 거미처럼 어미 몸을 파고들었다

지진이 있었고 번개가 치고 궁궐 안의 커다란 나무가 불에 탔다

 

<시와 사상>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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