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바람의 목회 / 천서봉

자크라캉 2006. 8. 17. 13:56

 

 

                       사진<온유>님의 블로그에서


  람의 목회  / 천서봉

  붉은 창문들 저무네.  거리엔 부옇게 물길이 번지고 벗겨진 대지의 표면이
비늘처럼 흘러가네. 햇살의 따가운 못질 뒤에도 나무들은 자꾸만 제 잎 쥐고
휘청거리네.

  버려진 오르간처럼 켜켜이 쌓인 공사장 파이프들이 저녁을 연주하네. 노을
따위를 발음하면 삶은 늘 뿌리부터 뒤척인다고, 저기 어깨 둥글게 웅크려 철
야기도를 준비하는 가로수.

  공중을 만지는 평화로운 연기를 보네.  바람은 오후 6시를 읽는 기술, 혹은
복음.  흔들려야지. 흔들려야지.  깃대처럼 골목에 나를 꽂아두네. 떨어져 빈
나뭇잎 자리까지, 다만 모든 것이 바람의 영역이네.

  늦은 상점의 문이 스르륵 밀렸다가 절로 닫히네. 누구일까. 누구일까. 어둠
의 긴 목이 자꾸 기울고 사람들은 정물처럼 늙어가네. 모두가 바람의 존재를
믿었지만 아무도 그의 뼈마디를 보지 못하네. 푸르르,

  저마다의 십자로를 건너는 시간,  허파꽈리처럼 웅크려  핀 생의 바람꽃들,
지천이네. 자라, 자라, 잠들지 않는 한밤의 환한 집회를 보네

 

 

 

 

2005년 <작가세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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