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씨실

海巖亭重修記<해암정중수기>

자크라캉 2006. 6. 26. 17:06

해암정 중수기(海巖亭重修記)

  기축년(己丑年 : 영조(英祖) 45, 1769)에 내가 척주 수령(陟州守令)으로 나갔었는데 거기에 도착하여 능파대(凌波臺)의 명승(名勝)이 한 지방에서 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공무(公務)의 여가를 이용하여 능파대에 가 놀았었다.

  그 능파대는 동해(東海) 연안에 있는데 둥실둥실한 언덕이 큰 물결에 불쑥 튀어나와 덩실하게 높고 구불구불하면서도 윗면이 평평하여 사람이 쌓아 만든 것 같다. 기이한 바위와 흰 돌들이 바다 가운데 여기저기 솟아 모두들 언덕을 향해서 빙 둘러 있어 그 높이가 수십길에 이르고 모양도 천백 가지로 다르다. 사자나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거나 중들이 팔장끼고 읍(揖)하는 모양과 같은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이 돛대처럼 빽빽하게 모여 있고 깃발처럼 뾰족뾰족 솟아 있어 여기저기 웅장하고 조각한 듯이 괴이하니 천하의 훌륭한 경치라고 말할 수 있다.

 고려(高麗)때 상서(尙書) 심공(沈公)이 그 능파대 가에 조그마한 정자(亭子)를 짓고 해암정(海巖亭)이라고 현판(懸板)을 달았었는데 지금은 이미 무너져 버리고 옛터만 그대로 남아 있어 늙은이들이 지금까지 그곳을 지적하고 있다.  公은 恭愍王공민왕) 때에 벼슬이 예의판서(禮儀判書) 집현전 제학(集賢殿 提學)에 이르렀는데 당시의 정치가 날로 잘못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마침내 결심하고 물러나니 공민왕은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려주어 은총(恩寵)을 베풀었다. 공은 복건(幅巾) 도복(道服)으로 바닷가 산에서 소요(逍遙)하니 사람들이 동해상(東海上)의 선옹(仙翁)이라고 일컬었다.

 그런데 공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자손들이 모두 흩어져 살아 정자(亭子)가 마침내 주인이 없게 되었고 또 세월도 점점 오래되어 차츰차츰 퇴락함에 이르렀다. 그러자 공의 7대손인 어촌공(漁村公)이 본도의 관찰사(觀察使)로 부임하여 중수(重修)하여 새롭게 하였으며 우암(尤菴) 송 선생(宋先生)이 현판(懸板)을 써 걸었었다.

  그런데 또 이 뒤로도 후손들이 점점 미약하여 정자가 다시 황폐(荒廢)되어 버렸다. 이에 공의 후손 수국(綬國) 노영(魯永) 박() 등이 그 정자 터가 황폐하여 잡초가 우거지게 됨을 개탄(慨嘆)한 나머지 서로 더불어 재물을 취렴(聚斂)하여 옛터에다 정자 3간을 지으되 처마나 서까래는 짧게하고 섬돌이나 주춧돌은 튼튼하게 하여 되도록 영구한 계책을 세웠고 또 그 황폐한 전말(顚末)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알려 줄려고 한다.

    나는 생각건대 자손들이 그 선조에 대해서 술잔이나 그릇의 잔여물(殘餘物)과 지팡이나 신발의 유물품(遺物品)일지라도 반드시 조심스럽게 보호하여 함부로 더럽히지 아니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사(亭)나 대관(臺館) 등의 소중함이며 더더구나 이 정자가 바닷가 명승으로 드날리고 상서공(尙書公) 만년의 깨끗한 명예가 여기에서 비롯하였던 것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정자가 누차 황폐되었다가 누차 중수(重修)되니 공의 자손들이 선조를 추모하는 데 성근스러움을 알 수 있으며, 당시의 유풍 여운(遺風餘韻)이 정자를 올라온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하ㅇ고 감개스러워 엊그제 일처럼 황홀하게 함이 있은즉슨 이 정자가 중수됨이 어찌 해산(海山)의 경치에만 빛을 더할 뿐이겠는가?

  내가 척주(陟州)를 떠나온지 지금 20여년으로서 능파대(凌波臺)의 명승이 꿈속에서 항상 떠올랐었는데 이제 그 정자가 중수됨을 들으니 더욱 그곳으로 마음이 치달려 간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을 적에 공의 자손들과 한 번 이 정자에 올라가 공의 유적(遺跡)을 읊을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

                          상(上) (정종(正宗))의 갑인(甲寅 : 정종 18, 1794)

봄에 숭록대부(崇祿大夫)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연안(延安) 이 민보(李敏輔)는 기(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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