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경호원K / 고형렬 <밤 미시령/ 창비 2006년>

자크라캉 2006. 5. 20. 21:13

 

 

                     사진<즐겁게 즐기는 하루만들기>블래닛에서

 

 

 

호원 K / 고형렬

 

30대 경호원은 늘 빠르고 간결하다

경호원의 철학은 '간결'이다

그의 걸음걸이는 늘 한쪽으로 기울었다

경호원 몸 속엔 권총이 있다

그 권총이 자신의 유일한 노리개다

잠자리에서 그는 작은 여자에게

검은 권총을 만져보라고 꺼내 보인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독일제 권총

총알은 약실에 박혀 있다고 말한다

한 방이면 끝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럴때, 권총은 남자 같다

그는 그녀 존재를 잊지 않는다 그에게

그녀는 울타리에 떠오르는 아침해다

여름 내내 향수내가 은은하다

경호란 순식간의 본능적 감각이며

상대의 화약내를 먼저 맡는 후각이라고

노을을 본다, 피 같고 꽃 같다

그는 위기와 경계가 있는 남자가 좋다

아니 그 속에 숨은 노란딱지의 실탄

어떤 불립자나 암호 같은

그는 그 생각을 하면 정말 경호원K의

존재를 깨닫는다, 문득문득

그는 경호원을 무지개처럼 쳐다본다

매일저녁, 나무처럼 기다리면

인생은 아침 같고 저녁 같다는 걸 안다

여자는 그러나 행복하다

항상 립스틱을 하고 머리를 손질한다

머리를 짧게 잘라 귀를 내 놓은 그녀

뇌리를 지나가고 있는 진행형의 총알

때론 지루한 장난감이라도

경호원의 생은 권총의 무게감이 있다

한 공간을 뚫고 가는 단 한 방의

경호원K의 마지막 총알을 생각해본다

경호원K의 방아쇠를 생각해본다

경호원K의 권총에선 별 냄새가 난다

 

 

<밤 미시령> 창비 2006년

고형렬

강원 속초 출생

197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대청봉 수박밭> 드이 있음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목 / 이언빈(먹황새 울음소리)  (0) 2006.05.23
사루비아1 / 이언빈  (0) 2006.05.23
춘수 / 정끝별  (0) 2006.05.16
개 / 조동범  (0) 2006.05.12
기차 / 김상미  (0) 200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