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미안하구나 / 송재학 <`05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자크라캉 2006. 3. 29. 15:49

미안하구나

 

                                               송재학

 

 

1

  외할머니는 아흔이 넘었다 잎 없는 감나무 둥치에 머문 햇빛

도 외할머니의 해바라기를 부축하고 있다 외할머니는 밥공기에

서 반쯤 밥을 자꾸 들어낸다 외숙모는 더 큰 그릇에 밥을 담아

외할머니가 밥을 들어내도 일정량이 되도록 조절해왔다 아무도

없을 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신다 같이 식사할 때만 자꾸 밥을

비워낸다  반 공기의 밥도 살기 위해서 먹는 게 아리라고 중얼거

리신다

 

 

2

  외할머니는 아흔이 넘자 묘법연화경을 태워버리셨다 아무리

경을 읽어도 당신은 아직 이승이라고 쫑긋하셨다 파킨슨병으로

하루에도 몇 번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맑은 마음으로 읽어가

던 묘법연화경이었다 과두문자처럼 비뚤비뚤한 자필 한글본 묘

법연화경이었다 올해도 감나무는 늦게 새잎을 내려나 보다

 

2005 미당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