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빗방울 화석 / 황동규

자크라캉 2006. 3. 29. 11:44

빗방울 화석 / 황동규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

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

점점점 찍혀 있는 빗방울 화석.

혹시 어느 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


감춘 눈물방울들이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

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

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03/2)




석(化石)은 말 그대로 돌이 되는 것이다. 단단히 굳어진다는 것이다. 지질시대의 동식물의 유해나 유적이 암석 속에서 불멸을 꿈꾸는 것이다.


화석하면 흔히 공룡을 연상한다. 이 시에서도 공룡이 등장하는데 공룡이라고 등장하지 않고 빗방울로 등장한다. 빗방울이 오랜 떨어진 자국이 가령 공룡의 발자국이란 것이다.


그것을 밀고 나가 눈물방울도 화석이라고 한다. “채 굳어지지 않은 마음 만나면” 사랑을 하게 되고, 이별로 헤어지든 사별로 헤어지든 헤어질 때 나오는 눈물방울은 가슴에 남아 있는 화석이라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 화석이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 폐에 남기는 화석이고 심장에 남기는 화석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되자 심장이, 아니 “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어떠십니까 등긁기 이웃 여러분!!! 그대들은 언제나 화석이 될 수 있는 “채 굳어지지 않은 마음”이 될 수 있겠습니까???

 



 

 

 

 

 

 

 

 

 

 

 

        황동규 시인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 영국 에딘버러 대학, 미국 아이오와 대학, 뉴욕 대학에서 수학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떤 개인 날》? 1961

《悲歌》? 1965

《太平歌》? 1968

《熱河日記》? 1972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문학과지성사 1978

《몰운대行》문학과지성사 1991

《미시령 큰바람》 문학과지성사 1993

《풍장》문학과지성사 1995

《악어를 조심하라고?》문학과지성사 1995

《외계인》문학과지성사 1997

《버클리풍의 사랑노래》문학과지성사 2000

《우연히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3

《꽃의 고요》 문학과지성사 2006

시론집

《사랑의 뿌리》문학과지성사 1976

현대문학상(1968), 한국문학상(1980), 연암문학상(1988),

김종삼문학상(1991), 이산문학상(1991), 대산문학상(1995),

미당문학상(2002), 홍조근정훈장(2003) 수상

현재,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