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주술가 / 박성우

자크라캉 2006. 2. 21. 21:14

주술가 / 박성우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거나 그녀는

화투로 하루를 점친다 말하자면 그녀는

도구를 사용하는 주술가인 셈이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엔

빙하가 녹아 내린 흔적이 있다

불의 사용이 다른 사람보다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이 잘못 흘렀으리라

그녀는 우리와 같은 북방계 퉁구스족의 한 갈래이지만

사람들은 가끔 그녀를 이방인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녀가 젊었을 땐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이동생활을 했다

처음엔 서울 근교 안에서 이동했지만

차차 지방 소도시를 거쳐 면 단위에 이르렀다

그녀가 주술적 행위를 시작하게 된 건

의식주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정착생활에 들어간 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들이 비어 있듯

그녀가 소유한 몇 개의 통장은 대부분 비어 있다

그녀는 유물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마음을 비운 주술가인 셈이다


-시집 {거미}(창작과비평사,2002/9)




기서의 그녀는 주술가라고 숨겨 말하고 있지만, 아마 다방에서 차 배달을 하는 나이 먹은 아가씨이거나 아니면 나이가 먹을수록 변두리로 변두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몸을 파는 여자이다.

짐작하기는 뒤의 인물이기 쉬운데, 변두리 인생 누구나 그러하듯 하루를 화투로 점을 떼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 보통 사람들이 로또 복권으로 1주일의 운을 시험하듯 그녀는 주술가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면에서 북방계 퉁그스족이 분명하지만, 같은 족속이 우리들은 짐짓 그녀를 모른 척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시작은 불의 사용이다. “다른 사람보다 빨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의 사용, 불같이 들끓는 연정과 불같이 끓는 몸의 사용이 그녀를 결국은 이동하는 운명으로 만든 것이리라

그렇게 시작된 불의 사용이 이제는 “빙하가 녹아내린 흔적”으로 남아 사람들이 모르는 척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그녀에게 찾아들어 그녀의 몸을 쓸모있게 만들거나 맞고스톱을 한 판 치기 보다 관찰만 하는 우리들의 시선, 시인은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하겠으나, 그렇다면 다시 도덕적인 잣대로 우리를 재단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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