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야도 김발 / 박성우
1
김발은 또다른 섬이 되어 개야도를 서성인다
취기 가시지 않은 사내들은 배 한 척씩 몰고 나와
그 섬들을 거두어 간다
2
밤마다 습관처럼
아랫도리 벗고 덤비는 파도들은
매심줄에 걸려 넘어지는 척 하다가
그물발의 엉덩이에 성기를 철썩철썩 박아 넣는다
사내 앞에서 옷고름을 풀던 숫처녀들도 그랬겠지
아프다 자지러지며 붉은 물감을 풀어놓는다
밤이 지날수록 정사는 격렬해져
김발은 얼굴 붉힌 홍조류가 된다
공식 같은 썰물이 오면
제 몸을 드러내어
비워진 구멍들에 해의 화살을 박는다
마른 매심줄엔 몇 개의 바람도 펄럭인다
3
갯바람 냄새 바뀌어 봄 오면
몇 알의 씨앗 남기고 죽을지언정
지금은 내 자리를 넓혀 가리라
순결했던 어제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니
날 창녀 같은 바다이끼라 불러도 좋다
습하고 짭짤한 공간에서야
어쩌다 그리워 해주는 그대들을 위해
그 독하다는 염산에도 난 죽지 않으리라
-시집 {거미}(창작과비평사, 2002/9)
개야도가 어딘진 모르지만 마치 발정 난 숫캐같다고 느껴진다. 그만큼 역동적이다. “박아넣는다 / 풀어놓는다 / 박는다 / 펄럭인다”가 모두 짐승이 한 판 흘레를 붙는 것 같이 숨이 가쁘다.
성의 담론을 시에 끌어들인 듯 솔깃한 장면도 여럿 있지만 단순히 인기를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면 “그 독하다는 염산에도 죽지 않으리라”로 외친 부분 때문인데, 이 대목에서 해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뒷받침하기에는 성적 발상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프다 자지러지며 붉은 물감을 풀어놓는다"를 ‘아프다 자지 넣어지며......'로 읽는 재미도 톡톡하다. 정말 시인이 이런 뉘앙스까지 염두에 두고 썼다면, 아니 분명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언어 수사 솜씨가 대단하지 않는가!!!
박성우 시인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 졸업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거미}
창비 2002 금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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