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궁서체의 여자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3. 25. 22:35

서체의 여자

 

 

심은섭

 

 

 

허기에 찬 굴뚝에 저녁연기를 피워내려고 그녀는

겨울나무처럼 서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불현 듯 얇아진 귀에 들려오는 풍문으로

사치와 부귀를 초서체로 써보았지만

풀잎처럼 흔들릴 뿐,

붓 끝에 젖은 먹물보다 몸은 더 어두워만 갔다

반칙은 타락을 낳는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다시 진지한 생의 획을 그어보려고

빈 들판으로 나가 새의 발자국을 주워오거나

사랑가를 부르다 죽은 매미들의 목록을 찾아 나섰다

달빛이 수수밭에 벗어놓고 간

유행을 타지 않은 푸른 새벽을 데려 오기도 했다

폭설이 내리는 날에 예정된 상견례로

궁핍과 정중한 악수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녀는

삼색 볼펜으로 밤의 수염을 그리지는 않았다

은자령에 뭉게구름이 걸어놓은 자유 한 벌이나

보릿고개를 넘다가 해산한 대추나무의 꽃잎 한 장도

탁발하지 않았다

어둠에 그을린 달의 영혼을 닦아주려고

새벽마다 화선지에 천 그루의 사과나무를 그렸다

 

그녀가

한 평생 눈물을 찍어 쓴

궁서체 편액 한 장이 오래도록 내 몸속에 걸려있다

 

 

 

-2022년 《시현실》 봄호

 

 

 

심은섭 시인

《심은섭 시인》

 

∙2004년 『심상』으로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평론집 :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상상력과 로컬시학』 외

∙(현)가톨리관동대학 교수

 

 

 

[시작 노트]-2022년 『시현실』 봄호 - (심은섭)

 

 

 

배반의 시인, 시의 배반

 

  시인이 시를 배반할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시가 시인을 배반할 때가 있다. 전자는 시인이 시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태도에서 비롯되고 후자는 시가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다는 불신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시의 유용성을 얼마나 이해하며 시를 쓸까? 이런 생각을 갖는 것조차 시인은 시를 배반하는 일이다. 시를 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단이나 하나의 권력으로 수용하려는 시인의 태도는 이 또한 시를 배반하는 행위다. 이런 방향으로 시인들의 정신의 강이 흘러가는 것은 시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시는 절망적인 사람, 고독한 사람, 허기진 사람, 슬픈 사람, 파괴되는 자연환경, 반핵운동 등을 더 허기지게 만들고, 더 슬프게 만들 뿐, 문제해결의 실마리 하나 제공하지 못한다. 다만 문제의 주변을 빙빙 배회할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시와 시인 간의 신뢰가 깨질 것이라고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작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된다. 그 반면에 인류를 구원할 시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령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초지능, 초연결, 초융합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제3차 산업혁명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혁명이다. 이렇게 로봇으로 대체되는 산업현장에서 인간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기계와 사람, 기계와 기계, 사람과 사람 간의 초연결이라는 임베디드시스템(embedded system)이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을 주목하며, 시는 어떤 의미 하나 배태하지 못하며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고 있다.

  문단은 시가 인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불신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는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으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어느 학자의 주장에 따른 시의 유용성을 부정하며 억압을 옹호하는 것보다 시의 유용성을 찾아내는, 혹은 창조하는 일이 지금 문단이 처한 위급함이며, 그 위급함을 해소하는 하는 일이 가장 상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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