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물의 발톱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3. 25. 22:44

 

 물의 발톱 

 

  심은섭

 

 

 

  달에서 지구의 플라스틱 병이 발견되었다

  그 사실을 지구를 향해 황급히 타전했으나

 

  벌집의 애벌레를 털어 먹었고, 피조개가 소유했던 갯벌을 갈아엎고, 세운 공장굴뚝의 연기를 마신 나팔꽃이 성대결절로 나팔을 불지 못해 새벽을 불러올 수 없다는 것과 산속 벌목공들의 톱질소리에 숲들이 원형 탈모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산새들이 신문사에 제보했으나 입에 거품을 물고 쓴 기사 하나 없다

 

  신문을 읽던 빗방울들이 치를 떨며 강가에 모여 완강한 쇠사슬의 스크랩을 짜고 황토빛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발톱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 발톱으로 지상의 길을 집어삼켰다 겁에 질린 어떤 나무는 겨울에 꽃을 피웠다 종족번식을 위해 여름밤과 협상하던 달맞이꽃의 생식기마저 거세하고 말았다

 

  온순한 물방울이 악어의 DNA를 얻으려고

  아프리카로 떠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2022년 《시현실》 봄호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2004심상으로 등단

-2006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

-저서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외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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