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맷돌의 궤적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3. 25. 22:41

 

 

돌의 궤적

 

 

심은섭

 

 

 

  어둠이 덧칠되는 저녁마다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남녀 댄서가 부둥켜안고 탱고 춤을 추는 줄 알았으나 그는 누대로부터 이어온 단단한 극빈을 타파하려고 입가에 흰 거품을 물며 도는 나의 파수꾼이었다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얼굴 표정으로 개화한 지상의 꽃을 부정하며 하루 종일 공터를 배회하는 궁둥잇바람인 줄 알았으나 땀으로 생의 간을 맞추며 무릎이 해진 나의 영혼을 수선하는 늙은 미싱사였다

 

  그가 허무를 신으로 숭배하며 공회전하는 물레방아인 줄 알았으나 제 몸을 갈아 인기척이 없는 굴뚝에 저녁연기를 피워 올리며, 어린 꽃들의 서늘한 하루를 봄날 같은 아랫목에 묻어 데우는 어머니였다

 

 

-2022년 《시현실》 봄호

 

 

심은섭 시인

악력-심은섭

 

-2004심상으로 등단

-2006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

-저서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나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 / 심은섭  (0) 2022.04.07
물의 발톱 - 심은섭  (0) 2022.03.25
궁서체의 여자 - 심은섭  (0) 2022.03.25
가문비나무엔 허파가 없다 - 심은섭  (0) 2022.03.25
타워크레인 - 심은섭  (0) 202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