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가문비나무엔 허파가 없다 - 심은섭

자크라캉 2022. 3. 25. 22:27

[사화집 원고 – 심은섭]

 

 

 

 

 

  가문비나무엔 허파가 없다

 

 

  심은섭

 

 

 

  이동의 욕망이 화산처럼 솟구칠 때마다 신은 나의 허파를 떼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친정집 마당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습니다

 

  까마귀가 스무 가지의 감각을 주고 갔지만 눈과 귀를 닫고 삽니다 오랜 시간은 이동의 습성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그 죄로 직립의 자세로 저녁마다 굵고 긴 반성문을 씁니다 수은주의 붉은 혓바닥이 빙점 아래로 통과할 때 벌목공의 톱날에 온몸이 잘려 나가도 이젠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둣빛살점이 뜯겨나가도 피죽바람을 불러와 생손을 앓습니다 나는 어떤 계절에도 한 장의 잎만으로도 천공을 뚫고 부활을 합니다

 

 

 

2022년 《K-POEM》 사화집 게재

 

 

심은섭 시인

《심은섭 시인》

 

∙2004년 『심상』으로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평론집 :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상상력과 로컬시학』 외

∙(현)가톨리관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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