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심은섭
마음속에 다져온 목관을 짜려고 세파에 썩지 않을 단단한 나무를 골랐다
그는 주춧돌을 놓고, 새들이 날아들라고 단청이 그려진 기둥을 세웠다 어깨동무를 한 네 개의 기둥은 황토벽과 손을 꼭 잡았다 가끔 세상 밖 무성한 바람소리를 수신하려고 넓은 창을 동쪽으로 냈다 북천별자리를 기억하는 굴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씌웠다 이름 없는 바람들이 목 축여 가라고 마당 한켠에 우물도 파놓았다 폐경이 되어도 꽃이 피는 꽃밭도 만들었다 헐거워진 생의 오후가 되어 목관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목관을 짜면서 발톱을 쓰지 않았다 어떤 음모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뭇결에 나무못이 남긴 상처가 훤히 보이는 목관이 완성되기까지 교만의 끝을 꺾지 못해 머리채를 휘감던 일도 있었다 젓가락 장단 맞추며 춤추는 날보다 전깃줄에 걸린 검은 봉지처럼 우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한 됫박 가량 모아 두었다 그럴 때마다 관절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목관 속에서 꽃이 몇 번 피었다졌다
허리를 낮추어 지상을 관찰하던 타워크레인이 그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2022년 『스토리문학』 봄호에 재수록(2021년 『시인정신』 봄호)
《심은섭 시인》
∙2004년 『심상』으로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평론집 :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상상력과 로컬시학』 외
∙(현)가톨리관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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