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백의 선언문
심은섭
눈이 내린다 무릎까지 차오른다
오와 열을 맞춰 서서 추위에 떨고 있는 저들을
한낱 나무로 생각했으나
나무가 아니다
기필코 세 번의 꽃을 피우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언 손으로 작성한 붉은 선언문이다
먼 섬나라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와도 허공에
꽃을 매달아야 한다는 것과
목을 꺾어,
통째로 땅 위에 떨어져서라도 꽃으로 다시
환생해야 한다는 것과 나의
부패한 정신의 마루에 꽃을 피워주겠다는 맹서이다
한낮에 마른 천둥소리 같은
선혈의 선언문 낭독에
산사를 오르내리던 바람도 고개를 끄덕인다
-출처 : 2021년 『See』 4월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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