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1
심은섭
판자촌굴뚝의 저녁연기처럼 겨우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온 풍각쟁이의 북소리이다 이것이 한낱 여름에 양철지붕을 두드리며 객기를 부리는 소낙비인줄 알았으나 어둠 속에서 달빛이 그려놓은 악보 위에서 달맞이꽃이 몸 푸는 소리였다
시간을 갉아먹은 누에가 은실을 뽑아내듯 가락을 숭배하며 살아온 네 박자이다 이것이 허공의 고막을 찢어낼 것만 같은 금관악기가 세상을 비관하는 유언인줄 알았으나 사내를 징용 보내고 돌아오는 여인의 치맛자락 끄는 소리였다
자정의 어둠보다 깊은 절벽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며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실폭포이다 이것이 바람이 던진 돌멩이에 도시의 뒷골목 선술집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인줄 알았으나 옥탑방 악사가 반음표의 허기를 끓이는 소리였다
-2021년 〈문학저널〉 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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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4년 『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6년 〈제1회 5·18문학상〉 당선 외 다수, 2009년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외, 2015년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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