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여인 1
심은섭
어제 밤의 취기가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절벽에 매달린 한낱 말벌집이거나 사막여우의 발자국인 찍힌 모래언덕쯤으로 알았다 그러나 심해에서 길어 올린 양수로 가득 채워진 후원이 있는 궁궐 한 채였다
컴컴한 밤에도 위조지폐의 표정을 읽어내는
수전노의 감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본적을 잃어버린 높새바람이 살던 둥근 움막집이거나 몰락한 왕조의 능인 줄 알았다 그러나 화강암으로 촘촘히 쌓아올린 산성이었다
양귀비꽃의 가슴에 붉은 허무가 채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얼굴 없는 당목을 섬기는 성황당이거나 카인의 후예들의 갈비뼈를 널어놓은 폐석장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천 개의 여신들이 지키는 신전이었다
-2021년 『문예감성』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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