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飽德醉義(포덕취의-김택준)에서 캡쳐 |
목관악기
심은섭
처음엔 악기가 저음으로 신음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던 어느
오후부터, 날마다
두레박을 내려도 닿지 않는 내 몸 속 바닥에 앉아 신음했다
가령, 내 뼈 안쪽으로 쌓이는 죽은 시간들의 아우성이거나,
길 위의 인적을 비우는 통금의 사이렌소리로, 난간 없는
바다에 서서 난파선을 찾지 못한 등대의 흐느낌으로 알았는데
스위치를 누르면 형광등이 일제히 두 눈 부릅뜨는 저녁
장엄미사의 마태 수난곡을 연주하여도 내 가슴에 걸린
달의 몰락을 구원하지 못할 때면 악기는
온몸에 푸른 채찍을 감고 울었다 빙점에서 쩌억쩌억 갈라지며
몸이 어는 강물소리로 울었다 때론 서쪽 능선으로
맷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 석양처럼 붉게 울었지만 나의
정신의 실밥이 터진 날엔 그 울음소리는 심한 악취를 냈다
열차의 레일 감기는 소리가 끊어진 삼등대합실 매표구를
기웃거리던 나는 공명을 잃은 악기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나는
Time誌 금융위기 발發로
무직교無職敎의 교주 세례를 받는 중입니다”
-2016년 <평창문학> 제27집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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