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 / 김승희

자크라캉 2010. 9. 13. 13:19

 

사진<daum이미지 검색>에서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 / 김승희

 

 

110층 화염의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여자는 핸드폰을 목숨처럼 껴안고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두 신발에 오렌지색 불이 붙는 것을 느끼면서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꼭두서니빛 불타오르는 화염으로 치마를 물들이면서

너를 사랑했으며 너를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하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엉덩이를 다 먹고

허리 한 복판을 너울너울 화염이 베어먹는 것을 느끼면서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이 불타는 허리 이 불타는 등줄기 이 불타는 모가지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누구나 자기 무덤을 만들 시간은 없지만

너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여자는

난폭한 머리카락 난폭한 두 귀가 갈기처럼 일어서는 것을 느끼며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죽지만, 죽어서는 안돼, 라는 연인의 말할 때

불길이 그녀의 하얀 두 손을 먹고 핸드폰을 녹일 때

그때

바로 그때까지

죽어선 안돼, 절대로 안돼, 라는 연인의 말이 전해진

두 귀짝을 소중히 움켜쥔 채

110층에서 떨어지는 여자는

!

 

 

 

 

[출처 : 시집『냄비는 둥둥』, 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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