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

난중일기 1 / 장경린

자크라캉 2010. 8. 19. 11:41

사진<Daum 영화>에서

 

중일기 장경린

 

1

영남 우수사의 통첩에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대었다」 하였고, 이와 동시에 또 수사의 공문서가 왔는데, 「왜선 350여 척이 벌써 부산포 건너편에 대었다」고 하였기로 즉시

 

2

나는 태어났다.

1957 10 9

 

3

맑음. 적선 8척이 뜻밖에 들어오니 겁을 먹고 경상수사가 달아나려고 했다. 나는 꼼짝 않고 있다가 각지기를 흔들며 뒤쫓으니 적선은 물러가고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수원을 지나고

평택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

고속버스가 (그래, 중금속 액체 같은 나를

누군가 시험 삼아 흔들어 대고 있었구나!)

천안을 고속으로 지날 때

어둠은 벌써 천안을 앞질러 와 있었다.

 

이윽고 혼선이 된 해안선과 나

게들이 잽싸게 게 구멍으로 숨어 버린 빈 바다

그 거대한 부동산 앞에서

나는 스피아민트 껌을 씹으며

 

4

지휘에 응하지 않고 적의 변고도 보고하지 않은 죄로 매를 때렸다. 따로 날쌘 장수를 선정하여 적을 무찌르게 했다. 최루탄 가스 자욱한 명동성당 언덕 위로 방독면을 쓴 전경들 우르르르 달려간다.

 

저 입 안 얼마나 텁텁할까

 

5

럭키 칫솔 구백 원짜리를 사고 오천 원권을 내면서, 문득, 내 엄지손가락에 가려진 율곡 이이 선생을 발견합니다. 이이(1536-1584), 오천 원권의 정교함, 수염과 미소와 한복이 가히 사대부다운, 바마0070982나 번을 부여받고 한국은행 총재 직인까지 쾅 찍힌, 조선 시대 때 공부깨나 했던 사람, 이런 분석 취미에 끌려서 나는 기웃거리고, 기웃거림 당하고, 나는 기웃거리기를 포기하고, 기웃거림 당하기를 포기하고

 

작은 냄비에

잔뜩 졸여진 갈치처럼

졸고 있을 때

 

6

바다에 빠져 있는 것을 굽어보더니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작자가 바로

적장 마다시라고 말했다. 내가 김돌손을 시켜

갈고리로 낚아 올린즉 준사가 좋아 날뛰면서

「그래 마다시다」 하고 말하므로 곧 명령하여

토막토막 자르게 하니

 

헉헉헉헉 길이 흐른다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달리는

내 아가리가 늑대처럼 헉헉헉

벚꽃 향기를 마신다 나이키 운동화 끈이

풀어져서 잠시 나뭇등걸에 기대어

헉헉 서울을 굽어보며 끈을

바싹 조여 맨다 헉헉헉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