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생명의씨앗과균형생식환>님의 카페에서
위독(危篤) 제1호 / 이승훈
램프가 꺼진다. 소멸의 그 깊은 난간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장송(葬送)의 바다에는 흔들리는 달빛, 흔들리는 달빛의 망또가 펄럭이고, 나의 얼굴은 무수한 어둠의 칼에 찔리우며 사라지는 불빛 따라 달린다. 오 집념의 머리칼을 뜯고 보라. 저 침착했던 의의(意義)가 가늘게 전율하면서 신뢰(信賴)의 차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시방 당신이 펴는 식탁(食卓) 위의 흰 보자기엔 아마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
[감상]
이 시는 제1호에서 제9호까지 연작시 형태로 이루어진 것 중 제1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 각 편이 의미의 맥락을 갖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독'이라는 말의 심상을 공통적 모티프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내면 세계의 처절하고 참담한 감정적 분위기를 순간마다 떠오르는 언어들의 상호 충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시에는 몇 개의 시적 소재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외부의 사물을 노래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직관 그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시적 소재들이 어떤 인과적 의미망이나 사실적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유 연상에 따른 초현실주의적 수법에 의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장송의 바다'라는 시구나 '위독'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죽음에 직면한 어떤 상황을 암시하는 인상만을 전해 줄 뿐, 분명한 내용 전개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 난해시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 보이는 여러 시어들, 즉 '램프'·'난간'·'장송의 바다'·'달빛'·'망또'·'어둠의 칼'·'불빛'·'집념의 머리칼'·'차건 손'·'식탁'·'흰 보자기' 등은 어떤 의미 질서의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식의 어두움, 또는 깊숙이 배어 있는 절망이나 고독의 감정을 제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단편적 사물들이다. 이러한 시어들은 시인의 개인적 내면인 어두움, 고독, 절망 등에 의해 발생된 것들로 무의식적 내면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램프가 꺼진다'는 첫 구절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변화, 즉 내면 세계의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어두움의 깊이는 '소멸의 깊은 난간'이라는 구절로 제시되어 있다. 바로 그 같은 내면 세계에서 도달하게 된 '장송의 바다'는 끝없는 절망을 표상하며,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는 마지막 구절은 '장송의 바다'의 끝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를 통해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것은 이들 언어들이 상호 충돌을 통해 이룩해 내는 내면적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 그 상황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는 현실의 실제적 상황에 부딪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한 실존의 내면의 무의식적 환상을 심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의 그 처절하고 참담한 정서적 상황은 곧 현실의 참담한 상황의 무의식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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