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시인

이승훈 시인 약력

자크라캉 2008. 10. 7. 19:06

승훈 시인』

※ 시인작가연구 - 이승훈 시인 (현 현양대 국문과 교수)


1. 이승훈 시인의 성함 , 본명, 아명, 필명, 또는 아호는 무엇인가?

이승훈 시인은 이승훈 시인 그대로다. 거치적거릴 것 없이 그대로 특이한 아명, 필명은 없다고 한다. 역시, 이점에서 또한 시인이 추구하는 모던적인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 출생지 ( 번지, 마을 이름까지 )는 어디인가?

1942년 11월 8일.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2가 60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은 강원도 홍천군 화촌 면에서 지냈다. 그 후로도 춘천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춘천교육대학교에서 10여 년간 대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그의 고향인 춘천에 대한 은근한 사랑이자 불안인 것이다.


3. 가계(家系) 부모, 조부모, 형제 관계는?

부모 - 부친은 이부영( 차남. 의사)이며 모친은 최숙영(제헌의원, 농림부장관, 강원도지사를 지낸 최규옥씨의 장녀)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공의 (현재의 보건의) 이어서 근무지를 자주 옮겼다고 한다. 부모님은 관계가 좋지 못했고 그런 모습은 어린 시인에게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한다. 아버지는 영월 도립병원 원장을 했었다.
조부모 - 조부는 이교승 (한학자)이었고 형제는 확인되지 않았다.

4. 학력, 초등학교부터 자세하게 가르쳐주신다면 ?

초등학교 - 화촌 초등학교입학.
초등학교 2학년 때 6.25동란으로 수복 후 춘천초등학교 졸업

중학교 - 1954년 3월 춘천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 1957년 춘천고등학교입학.
대학교 - 한양대 공과대 섬유공학과에 특차로 입학.
한양대 공과대 섬유공학과 3년 자퇴.
1964년 3월 한양대 인문대 국문과 3년으로 재입학.

대학원 - 1966년 3월.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 입학
1968년 2월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 홍천에서 인제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화촌면의 화촌 초등학교 입학 후 원주, 홍천 초등학교로 전학을 다녔으며, 졸업은 춘천 초등학교에서 했다. 이런 과정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데 많은 어려움과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시인은 초등학교시절 따뜻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했다.
또한, 고교시절까지도 자신의 괴로운 현실에 많이 좌절하고 힘들어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 이상의 「아침」을 읽고, 카프카의 소설 주인공 K를 보고, 그들이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5. 시작(시문학의) 동기,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가?

시인은 춘천에서 보낸 고교시절부터 자신의 괴로움과 고독을 이기기 위한 방편으 로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병적인 느낌을 준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어두운 가정환경 때문이었으리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려서부터 병이 든 셈이다. 어려서부터 내가 시를 읽고 또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고독을 견디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 한양대 국문과 홈페이지에서 발췌 -

※ 1957년 2학년 때 강원일보 주최 도내 고교학생문예현상에 시<얼굴>당선. 학생 잡지[학원]에 <나목이 되는>이 우수작으로 선정. 3학년 때 학원문학상 시부분에 <거울>이 우수작으로 당선

6. 등단 년도 , 등단 작품 , 당시 심사위원 및 추천위원, 어디로 나왔는가 ( 신
춘 문예, 문예지, 신인상 )

등단 연도 - 1963년 4월. 등단
등단작품 - [낮]외 1편이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1회 추천. 같은 해 8월 [바다] 외 1편이 2회 추천
추천위원 - 박목월
등단문예지 및 신문사 - 현대문학 박목월 추천


7. 등단동기

‘1961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고교시절에 생각했던 대로 공과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틈틈이 시를 썼고, 쓴 시들을 지금은 돌아가신 박목월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1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고 기억된다. 선생님께선 그동안 내가 보여드린 시 가운데 두 편을 골라 문예지 <현대문학>에 신인으로 추천을 하셨다는 것이다.’
시인은 1962년 《현대문학》지에 〈낮〉 〈바다〉가, 1963년 〈두개의 추상〉이 박목월 선생님에 의해 3회 추천됨으로써 시단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해 당시의 신세대로 구성된 《현대시》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시인만의 시 세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원래 《현대시》 동인지는 1961년 김춘수, 전봉건, 김종삼, 김광임, 이중 등이 중심이 되어 간행되던 것이, 1964년 6집부터 당시의 신인들인 김영태, 이유경, 주문돈, 정진규, 이수익, 박의상 등이 동인이 되어 본격적인 동인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그 운동에 시인도 참여한 셈이다. 틈


8. 영향받은 시인 및 시, 시집 있다면

시인은 이상 의 시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다. 시인이 서정주 선생이 편집하고 정음사에서 간행한 한국명시선이라는 책에서[아침]을 읽고 자신을 노래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침] 에는 밤새도록 앓고 고뇌하는 자아의 모습과 힘겹게 맞이하는 아침이 그려져 있어 이승훈 시인의 청소년기가 어땠을까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시인에게 이상과 비견되게 영향을 끼친 작가는 카프카라고 한다. 카프카의[성]을 읽으면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찾을 수 없는 주인공 K가 자신 같았다고 한다.


9. 교우관계, 문단, 시단 및 그 밖의 분야의 교우관계

동기생-이건청 시인
동급생-전상국 소설가
동인-주문돈. 이유경. 김영태. 이수익. 정진규. 황운헌. 허만하.
박의상. 오세영 김종해. 김규태. 오탁번.

10. 가장 아끼시는 작품

이점은 알아내지 못하였지만 그의 시적인 사유를 보아서는 특별히 아끼는 것은 없고 모든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사물 A」,「위독」,「사물의 편에서」등이 있고 최근에는 더욱 난해적이면서도 내면적으로 한층 심화된 시를 쓰고 있다.


11. 꼭 쓰고 싶은 작품

< 시의 아포리아: "시는 나의 의지를 넘어선다" >
이승훈이 절대 절명의 과제로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제를 규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것은 다름 아닌 '시-그-자체'를 명쾌하게 규명하는 데 있지만, 시는 시일뿐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점을 우리는 '피카소의 사랑과 예술'을 패러디 한「시」,「개미시」,「방황이 시를 쓴다」,「크리티포에추리?」,「제목 없는 시」,「이 시대의 시 쓰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시」, "나는 시를 쓴 다음 가까스로"로 시작하는「시」,「시 쓰기의 매혹」,「모든 사람이 쓰고 싶어 하는 시에 대해」,「거짓말의 시」등에서 확인할 수 있고, 다음은「노예에 대해」와「이 글쓰기」에 나타나는 '한 편의 시속의 두 편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데리다가 자신의 '해체주의'에서 강조하는 글쓰기의 원형에 관계되고, 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강조하는 기존형식의 파괴에 관계된다.
시를 쓰면서 그것의 원형을 '기필코' 찾아내려는 부단한 의지로 인해서 시를 패러디 해보기고 하고 '개미'에 비유해보기도 하고 '비평 시'라고 명명해보기도 하고, 제목을 붙이지 않기도 하고 '시는 거짓말하기'로 정의해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이 시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현이전의 것, 선택이전의 것, 언급이전의 것, 글쓰기 이전의 것, 즉 사유의 본질을 규명해야만 가능해지지만 그러한 작업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포리아'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은 결국 아포리즘, 의미의 散種, 본질로부터 자꾸만 벗어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인은 "시는 나의 의지를 넘어선다"고 선언하게 된다. 시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 시인은 우선적으로 개미가 되기도 하고 텍스트 자체가 되기도 하고 언어자체가 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한 편의 시속의 두 편의 시'를 모색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주관적 입장을 넘어서는, 좀더 한발자국 ‘원형’으로 들어가는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12.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오랜 인식론적 물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결핍과 불안, 공허와 절망을 넘어설 출구를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물음은 '과연 나는 존재하는가, 세계는 존재하는가?' 라는 존재론적인 것으로 바꾸게 되고 '나 또는 세계는 없다'에 이르게 된다. 그는 "그 동안의 시 쓰기에서 얻은 결론은 한마디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 <나는 타자다>라는 명제다. 그렇다면 <이승훈>으로 불리 우는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타인마다 다르겠지만,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라는 주장을 펼지고 있다. 최근에 쓰여진, 그리고 쓰고 있는 시들은 의도적인 것들은 아니지만 이런 명제로 쓰여지고 있다.
이것은 곧 「해체시론」을 말하는 것이다.


13. 오늘의 한국시는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 요즘 시 단계에 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고, 그냥 시라고 붙어진 요물들이 너무 많다.' 라는 이 말은 최근 시단계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대해 무성이한 태도와 조잡한 글쓰기, 시도 아닌 것들을 들고 나와 시라고 팔아먹는 작자들, 상업주의에 변질되어 오직 눈앞의 물질획득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이 세상에 무덤이 많은 면, 세상이 무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덤, 집, 경계에 대한 자크 데리다의 사고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단계의 문제는 시단이 아닌 곳에서도 너무 많은 곳에서도 너무 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너무 상투적인 표현으로 점철된 시들이 파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시가 잊혀가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현 시 단계에 검증도 되지 않은, 진정한 문학의 전철패스를 사지 않은 무단탑승자의 상투적인 어지럽힘으로 시가 제 기능을 잃고 과도하게 넘쳐흐름을 경계하는 것이다.
왜냐면 시는 그냥 쓰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우리가 쉽게 쓰고 판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기 보다 최근의 몇몇 시인들을 보면 아무런 뜻도 없이 언어를 남발하고 그저 드러내놓고 말하는 등, 오히려 그들의 시 때문에 선택권, 다채성은 넓어진 것이 아니라, 비좁아진 것이다.
앞서 서술 한 것과 같이 그래서, 우리는 더욱이 좋은 시를 천착해야하는 것이다.


14. 시를 지망하는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

시인이 누구인가? 시인이 문화와 제도라는 두 영역 사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닫혀 있으면서도 닫혀 있지 않는 특수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의 위치는 이미 <프로 화>라는 현재적 위치를 통해 사회적 체계에 담겨져 있으므로 결코 완벽하게 현실을 객관화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안전하지 않은 그 오염된 공간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고고한 수도자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담하고 있는 그 더러운 일상을 어떻게<문제화>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주체의 동일성을 양보한 대신 현대담론은 무한한 진리의 서술 방식들을 수확했다. 만약 진리서술의 마지막 방법론이 있다면,
거대한 허위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질서에 대한 위반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시인은 「1.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에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우리가 떠나온 진리의 대륙이 진리가 아니라 말이었듯이,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이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끝이 시작이고 무목적이 목적이다>(150)이다. 그것이 오늘날 시의 현실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그는 <요컨대 문학은 없음, 부재, 폐허의 놀이이다. 어디에도 없는 현실이 문학 속에 있다. 우리가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이런 없음의 가치, 부재의 가치, 페허의 가치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결론은 이 페허 속에서 시단과 문단을 구하는 진정한 시를 쓰라는 것이다. 시다운 시를 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15, 취미활동, 관계

시인은 특별한 취미 활동이라기보다 담배도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태우시는 골초이고 맥주도 2병씩 마시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불안해서 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