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시인

이승훈론 /류경수

자크라캉 2008. 10. 7. 19:09
승훈론  / 류경수

평론 - << 이승훈, 그 자체로써의 비대상적 수사학>>

우리가 알아본 이승훈 시인은 문단 계에서 누구보다도 현대 언어학적, 철학적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분이라는 것과 모던 적인 시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시인이었다.
특히, 그의 시는 대부분의 대상이 일정치 않으며, 무엇보다도 ‘너와 나 그리고 타자’의 구조를 파괴하고 끝없이 자아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해체시론』(새미출판사,1998)에서 ‘시적인 것도 없고 시도 없다.’, ‘문학의 역사는 폐허의 역사이다’라고 말했으며, 최근에는 『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에서는 ‘자아인식은 모두 타자인식이다“, ”억압이 없으면 나도 없다.“라며 대상과 비대상의 차이, 그리고 대상에서 보는 주관적인 시선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무의미시’의 김춘수와 초현실주의적, 시뮬라르크적인 다다이스트 이상의 중간쯤에서 그만의 ‘비대상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김춘수가 심상만을 제시하는 서술적 이미지에 초점을 두는 데 반해, 이승훈은 무의식적 세계의 환상을 순간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언어로써 이미지의 고리를 만들어 형상화하는 데서 이르는 말이다.



램프가 꺼진다. 소멸의 그 깊은 난간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장송(葬送)의 바다에는 흔들리는 달빛, 흔들리는 달빛의 망또가 펄럭이고, 나의 얼굴은 무수한 어둠의 칼에 찔리우며 사라지는 불빛 따라 달린다. 오 집념의 머리칼을 뜯고 보라. 저 침착했던 의의(意義)가 가늘게 전율하면서 신뢰(信賴)의 차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시방 당신이 펴는 식탁(食卓) 위의 흰 보자기엔 아마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
「 위독(危篤) 제1호 」({현대시} 13집, 1967)


이 시는 제1호에서 제9호까지 연작시 형태로 이루어진 것 중 제1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각 편이 의미의 맥락을 갖는 것은 아니고, '위독'이라는 말을 공통적 모티프로 삼고 있을 뿐이다. 시는 내면세계의 처절하고 참담한 감정적 분위기를 순간마다 떠오르는 언어들의 상호 충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사이마다, 시적 소재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외부의 사물을 노래하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시적 소재들이 인위적, 과장적이나 사실적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유 연상에 따른 초현실주의적 수법에 의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장송의 바다', '위독'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죽음의 불안한 상황을 보여줄 뿐, 정확히 시의 전개를 볼 수 없어 난해적인 모습도 있다.

또한, 시어들이 특정적인 의미 질서의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어두운 절망이나 고독의 감정을 제 스스로 나타내는 사물들이다. 이러한 시어들은 시인의 개인적 내면인 어두움, 고독, 절망 등에 의해 발생된 것들로 무의식적 내면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램프가 꺼진다'라는 어둠으로의 변화, 즉 자아내면의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게 한다. '소멸의 깊은 난간'은 어둠의 폭과 수심을 의미하며 바로 이 같은 내면에서 도달하면 '장송의 바다'는 끝없는 절망을 표상하며,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는 마지막 구절은 '장송의 바다'의 끝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죽음에 죽음의 더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언어들이 상호적 충돌을 통해 만들어내는 내면적 현장으로 들어가 그 속의 상황 안에서의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는 현실의 실제적 상황에 부딪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한 실존의 내면의 무의식적 환상을 심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 ‘처절한 내면의 상황은 곧 현실의 절망적 상황의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인은 현실에 앞서서, 환상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이 첨예하게 충돌, 대립, 해체하는 내면세계를 작품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첫 시집부터 시작되는 내면에 대한 물음이 두 번째 시집에는 한층 깊어진다. 그는 여기서 실존적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존재・무・실존 등의 형이상학적 철학에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관념적인 후기 구조주의적인 시인임을 말해 준다. 또한, 시인의 존재탐구의 시는 현실세계가 대부분, 배제되는 망명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는 시집《당신의 초상》을 내면서 자신의 시를 ‘비대상시’라고 명명하였다한다.

이 책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이 글을 읽는 당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내가 신은 양말은 무슨 생각을 하고/저 가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벽에 걸린 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벽에 걸린 카렌다는 무슨 생각을 하고/모두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무슨 생각이 무슨 생각일까?/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저 기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승훈 씨의 열 가지 생각」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주관에 입각하여 펼쳐진 사물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 시에는 주관은 배제하도록 하고, 사물을 나와 너도 아닌 대상이 없는 무엇에 대해 사물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과 사물의 흉벽은 순식간에 해체되어버린다.
이런 이론은 시인의 시의 메타포에 항시 적용된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시의 구조는 더 깊이 들어갈수록 어지러운 몽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다음 시를 봐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 할 수 있다.

사나이의 팔이 달아나고 한 마리 흰 닭이 구 구 구 잃어버린 목을 좇아 달린다. 오 나를 부르는 깊은 명령의 겨울 지하실에선 더욱 진지하기 위하여 등불을 켜놓고 우린 생각의 따스한 닭들을 키운다. 닭들을 키운다. 새벽마다 쓰라리게 정신의 땅을 판다. 완강한 시간의 사슬이 끊어진 새벽 문지방에서 소리들은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얀 액체로 변하더니 이윽고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빛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사물 A」

이 시는 시인의 초기 시로서,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살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로 끝맺는「사물 A」에서는, 사물이 인식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는 생명체의 비극성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것은 무의식 속에 투사된 실존에 대한 환상이며, 매우 암시적인 풍모를 드러낸다. ‘목이 달아난 닭’이 목을 찾아 좇아 뛰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이 장면이 절대적인 무언가를 잃은 자아의 고뇌와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은, 그러나 제대로 드러내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내면적인 시풍은 시인 외에도 김영태, 이수익 시인의 시상에서 자주 느껴진다. 김영태의 시가 초현실적이라면, 이수익은 아주 온화한 심상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마 이승훈 시인은 중립적이고 애매한 기로에 서있을 거라는 생각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가 너무 심리적으로 들어가면서 과도한 난해성, 지나친 환상의 추구, 탈사회적인 내면의 집착으로 인해 정점의 한계에 이르고 만다.

불안해서 시를 쓰고 불안해서 전화를 걸고 불안해서/시를 분석하고 책을 내고 술을 마시고 외출도 못 한다/불안해서 못 한다 여행도 못 한다 도대체 엄두를 못 낸다/꿈도 못 꾼다 불안해서 가방을 들고 바람에 젖고 소음에/시달린다 말라죽을 불안이라는 놈 초라한 저녁이 오면/초라한 방에서 시를 쓰고 불안해서 다시 전화를 건다/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본다/세상엔 바라는 게 있군 비에 젖는 차들을 본다 비에/젖는 차들은 불안하지 않으리라 사랑이 없으니까 욕망도/없으리라 차들은 행복하다 따뜻하다 참담하다 따뜻한/참담한 저녁이 있다 불안해서 시를 쓰는 남자가 있다/세상에 불안해서!
「서울에서의 이승훈」


그 외의 시인의 여러 시를 보게 되면 그가 얼마나 불안에 떨고 불안에 안주하고, 결국엔 사랑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유년의 흐리고 어두운 기억이 그의 자의식 안에 깊숙이 자리 잡혀 무엇으로도 적출 할 수 없는 거대한 기생충이자, 시인 자신을 보호하고 시를 쓰게 하는 괴물인 것이다.
결국 시인은 불안으로 시작되는 존재의 물음을 지속적으로 내면에서 끌어올려 시에 레이저를 투사하여 사물을 굽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시인은 춘천고교시절 이상의 시「아침」을 만나게 되면서, 이상과 같이 현실의 괴로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계속적인 추궁으로 작품과 텍스트, 나와 너의 관계에 벽들을 허물고, 인위적인 잣대의 경계를 없애버리고 만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우리가 문학을 배워가면서 알게된 지식들과 그리 다른 것은 아니다. 허나, 모던적이며 해체적인 그의 작품은 타자를 내면으로 이끌어가서 다시 한번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결국, 자신만의 계속되는 추궁과 탐구로 인해 시인은 새로운 방향과 내면적 언어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이승훈 시인은 확실히 모던적인 인물이자, 자신 스스로 알 수 없는 괴력과 신경적 불안을 항상 안고 사는 것 같았으며, 그 자신부터 비대상적인 수사학에 몸바치고 있는 것이다.



이승훈(李昇薰) <시인 약력>

1942년 강원도 춘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바다>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4년 '현대시' 동인

1983년 제29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7년 제1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겸 {현대시 사상} 주간

* 시집 : {사물 A}(1969), {환상의 다리}(1976), {당신들의 초상(肖像)}(1981), {사물들}(1983), {당신의 방}(1984), {너라는 환상}(1990),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등

* 평론집 : {반인간}(1975), {시론}(1979), {이상(李箱) 시 연구}(1987) 등


<참고자료>

현대시, 2002년 11월호

미네르바, 2002년 12월호

해체시론, 이승훈(새미출판사,1998)

그 외의 이승훈 시인 시집들을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