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어떤 나무의 분노 / 법정 스님

자크라캉 2010. 5. 4. 17:29

사진<부산 성남초등학교18회동기회>님의 카페에서

 

 

떤 나무의 분노 / 법정 스님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칼자국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헌장의

어느 조문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 것 없는 이름 석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증언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들을.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을.

 

 

 

출처 : 동아일보, 2010. 4. 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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