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봉부부산악회>님의 카페에서
포도밭 국숫집 / 박서영
포도밭 국숫집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네
흰 면발 한 가닥 한 가닥 양푼이 속의 국수
멸치와 김치가 발굴되고 계란과 부추가 발굴되네
반죽이 밀봉이라면 국수 가락들은 풀려나온 죄수들 같네
반죽이 침묵이라면 국수 가락들은 유령의 대화 같네
금방 사라지고 마는 투명한 대화
포도밭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네
햇살의 뼈를 끓이니 이리 부드럽고 쫄깃해
밀밭으로 도망친 죄수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네
유령의 대화를 받아 적을 수 있을 것 같네
포도밭을 눌러쓰고 찌그러진 양푼이 속의 국수를 먹네
여름은 짧고 포도알은 아직 익지 않아서 새콤한데
후루룩 먹은 한 다발의 길들이
태양을 묶어 내 앞에 잡아올 수 있을 것 같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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