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구성동九城洞 / 이진명

자크라캉 2010. 3. 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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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인주화실>님의 카페에서

 

성동九城洞 / 이진명

 

 

구성동은 정지용 시인의 시이다

구성동 시를 좋아하여 책상 위에 수년 붙여 놓고 지낸 적 있다

골짝에는 유성이 묻히고

황혼에 누리가 소란히 싸이기고 하고

꽃도 귀양 살고

절터였더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는다는 구성동

산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는

구성동을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금강산 골짜기에 있는 동네라는 것

 

금강산 못 가보고, 가볼 수 없고

그래서 사슴이 일어나는 구성동 더욱 모르고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구성동이 폐허라는 것

길 끊어진 곳이라는 것

사람 그림자라곤 비치지 않는 유계 같은 곳이라는 것

그러니까 캄캄한 곳

절해고도 같은 곳

죽은 줄 알고 눈 감은 채 눈뜬

벼랑 끝

원고마감에 시달리는 이 한 달여

컴퓨터 앞에 앉아 졸며 깨며를 거듭하다 괴로워

마음의 고향 구성동 가고 싶은데

구성동 가 울고 싶은데

벌떡 일어나 구성동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시 끊어진 황폐한 곳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는 곳

체념하듯 컴퓨터 앞에서 떨어져

책상 귀퉁이에 박아 놓은 언제 읽을지 말지 모를

일본어 문고본을 괜히 집어들었다

‘파계와 남색의 불교사’

이런 것이 내 시런가

내 구성동이런가

파계와 남색과

남의 나라 불교사 같은 거나 모여드는

으흐흐 웃기는 천한 나의 구성동

 

 

2010년《문장웹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