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 / 이진명

자크라캉 2010. 3. 9. 23:42

 

 사진<아름다운 등산 낚시>님의 카페에서

 

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 / 이진명

 

 

명절 뒤끝 오십대 여자들이 다 저녁에 모였다

하루가 벌써 갔다고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마음은 이십대와 다를 게 없는데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짧다고

남은 시간이 적다는 것을 점점 피부로

왜 있잖아,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는

더 빨리 없어지는 것 같잖아. 그처럼

더 빨리 없어져 가고 있는 우리 어찌할까

 

둘둘 마구 풀어쓰던 두루마리 휴지가

공중에 귀한 새처럼 오롯이 떠올랐다

동그랗고 하얀 새, 중심이 빈

저 무저항, 저 한 편의 심플함

풀리면 풀려서 마지막 얇고 주름진 몇 장의 흰 깃털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는

깃털 연약하고 가슴은 뛰니

둘둘 풀지 말고 한 장씩 끊으며

애련으로 한 장씩 뜯으며

공중에 오롯한 귀한 새

그래도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느리게 흘러내릴 우아한 깃털의 시간이

 

2010년《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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