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름다운 등산 낚시>님의 카페에서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 / 이진명
명절 뒤끝 오십대 여자들이 다 저녁에 모였다
하루가 벌써 갔다고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마음은 이십대와 다를 게 없는데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짧다고
남은 시간이 적다는 것을 점점 피부로
왜 있잖아,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는
더 빨리 없어지는 것 같잖아. 그처럼
더 빨리 없어져 가고 있는 우리 어찌할까
둘둘 마구 풀어쓰던 두루마리 휴지가
공중에 귀한 새처럼 오롯이 떠올랐다
동그랗고 하얀 새, 중심이 빈
저 무저항, 저 한 편의 심플함
풀리면 풀려서 마지막 얇고 주름진 몇 장의 흰 깃털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는
깃털 연약하고 가슴은 뛰니
둘둘 풀지 말고 한 장씩 끊으며
애련으로 한 장씩 뜯으며
공중에 오롯한 귀한 새
그래도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느리게 흘러내릴 우아한 깃털의 시간이
2010년《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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