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이동移動 / 이성복

자크라캉 2009. 11. 23. 22:20

 

 

 사진<별 마을>님의 카페에서

 

동移動 / 이성복


초식민족(草食民族) 사내들의 이동(移動), 아이들은
공터에서 놀게 내버려 두고, 여자들은
양장점과 미장원과 부엌에 가둬 놓고
외몽고(外蒙古) 군사들은 우리를 번호로 불러냈다
53번, 닭의 내장 속으로 54번, 텍스
속으로 55번, 창(槍) 끝으로 당장 떠나라
이 땅은 이제 재벌급 인사가 매점(買占)했다
네가 오른발 내린 곳은 영화 배우의 땅
네가 오줌 갈긴 곳은 권투 선수의 정부(情婦)의 동생의 땅
밤새 뀌뚜라미 울던 곳은 예술원(藝術院) 회원의 땅
네 그림자는 두고 가라, 자유로운 잡초들에게
잡념도 던져 주어라, 거수 경례하라
정욕의 재를 날리며 꼬리표를 달고 출근하는
바람에게, 풀 먹인 날개를 자랑하며
식민지(植民地)의 수도(首都)를 사열하는 새들에게
잘 가꾸어진 가로수는 말발굽 울리며 앞서
간다, 草食民族 사내들의 移動
주간지(週刊紙) 겉장의 딸아이들은 키스를 던지며
환송하지만, 약속된 불빛이 안 보인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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