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그날 아침 우리들의 팔다리여 / 이성복

자크라캉 2009. 11. 23. 21:46

사진<798art>님의 카페에서

 

 

날 아침 우리들의 팔다리여  / 이성복

                                            

 

그날 아침 비 왔다 개이고 다시 흐리고 갑자기 항아리에서

물이 새고 장독이 깨지고 그날 아침 工員들 실은 트럭이

장사진을 이루고 어떤 녀석은 머리에 흰 띠 두르고 깃발을

흔들고 계집애들 소리내어 껌 씹으며 히히닥거리며 줄 맞춰

가고 버스를 타서나 내려서나 우리는 한결같은 군대 얘기

잠시 침묵. 다시 군대 얘기 <비상 걸리면 높은 양반들도 불나게 뛰었지․․․․․․>

그날 아침 종루에는 종이 없고 종이로 접은 새들

곤두박질하고 우리는 나직이 군가를 흥얼거렸다 그날 아침

안개와 뜬소문은 속옷까지 기어들었고 빈 터엔 유리 조각이

굽은 쇠못이 벌겋게 녹슨 철근이 파밭에는 장다리가 길가에선

학교 가는 아이가 울면서 그 어머니가 주먹질하며 달려오면서

<이 옘병할 놈아, 네 에미를 잡아 먹어라> 그날 아침

테니스 코트에는 날씬한 여자와 건장한 사내가 흰 유니폼을 입고

흰 모자 흰 운동화를 신고 흰 공을 가볍게 밀어 치고

그날 아침 동네 개들은 물불 안 가리고 올라타고 쫓아도

도망 안 가고 여인숙 門을 밀치며 침 뱉는 작부들 우리는

다시 군대 얘기 <휴가 끝나고 돌아올 때 선임하사를 만났더랬어

그 씨팔놈......> 그날 아침 매일 아침처럼 라디오에선 미국사람이

<what is this?>라고 물었고 학생들이 따라 대답했다

<홧 이즈 디스?> 그날 아침 헤어지며 우리는 식은 욕망을

피로를 기억 상실을 군대 얘기로 만들었고 대충 즐거웠고

오 그날 아침 우리들의 팔다리여, 무한 창공의 깃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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