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1959년 / 이성복

자크라캉 2009. 11. 23. 22:02

 

 사진<ktx2004>님의 블로그에서

1959년  / 이성복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갔다
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먹거나
이차 대전 때 南洋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과 不感症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修飾했을 뿐 아무것도 追憶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소리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
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
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왔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과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

 


[시평]


이 시는 이성복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의 권두시로서 이성복 시세계의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는다. 이성복에게 있어 '봄'이란 삶을 삶으로 있게 하는 어떤 아픔의 공간으로 보인다. <꽃 피는 시절>이 그렇고 <봄 밤>이 그렇다. 여름과 겨울이 아픔이라는 거대한 공기가 짓누르는 견고한 계절이라면, '봄'은 그 아픔을 아픔으로 있게 한 원인들이 그 비밀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그것은 삶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이다. 이 시에서의 아픔의 내용은 '不姙의 살구나무'에서 보여지는 생명성의 부재,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는 소년들의 성기'와 같은 도저한 삶의 불합리성, '이차대전 때 남양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온 편지'가 보여주는 어이없음, 당황스러움이다. 문제는 그 아픔을 아픔으로 있게 하는 원인들인데, 그것은 '무기력'과 '불감증'이다. 그것은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죽음의 공간이다. 무기력과 불감증에 의해서 '살아있는 어머니'와 '발랄한 어머니'는 내 구둣발에 짓이겨지고 '春畵'에서나 '부패하게 떠오른다.' 시적 화자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비극성은, 이러한 아픔의 망각을 가능케 하는 '무기력과 불감증' 이 깊이 침윤되어 있는 세계, 1959라는 숫자로 상징화될 수 있는 시대의 아픔이다. 1959라는 숫자는 곧바로 1960이라는 숫자를 연상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꼭 사회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더라도 1959년이라는 죽음의 삶의 공간을 보여줌으로서 시인은 아픔이 온전히 아픔의 구실을 하고 '삶의 경보장치'로서 작동하기를 갈망한다. 불감증과 무기력에서부터의 탈출은 '싸움'에 있다. 시인 자신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은 이 '불감증과 무기력의 원인'인데, 그것은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 같은 것이다. 이 싸움의 대가로 시적 화자는 '자진해서 감옥으로' 간다. 이 시 이후의 시들은 이 감옥에서의 싸움의 기록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아주 열린 형태로서 끝을 맺고 있는데, 삶의 감옥 - 그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상에 도저한 여러 가지 아픔에서 온다 -으로 '자진'해서 가는 시적 화자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의 싸움, 화해를 종용하는 거짓 논리들의 부정, 그것이 이성복 초기시를 결정 짓는 단서다.

 

출처: <poemcafe.co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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