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낙화流水>님의 블로그에서
[2009년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되창문 / 정성수
심부름을 갈 때마다 되창문이 열리고
마당 섶이나 마루 끝에 가래침이 떨어졌다.
어느 때는 내 발 아래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가래침을 슬며시 밟고는
할아버지가 눈치 채지 않게 짓이겼다.
뀅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웃집 할아버지는
산송장이었다.
그 때 심부름을 가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다.
법정 제3군 전염병. 폐결핵
폐결핵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씰은 몇 장이나 사면되느냐고
대한결핵협회가 뭐하는 곳이냐고
인터넷을 뒤지며
때 늦은 공부를 한다.
옆방에서 아내가 밤새도록
가래침을 뱉는다.
가래침이 내 가슴 한 복판에 떨어질 때마다
유년의 되창문이 자꾸 자꾸 열린다.
* 되창문 : 초가집 안방문 옆에 조그만 유리창이 붙은 작은 문.
[당선소감]
이름표하나 받아서 가슴에 붙였다. 선생님께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가슴에 붙여준 이름표 같은 ‘신춘문예 당선’이다. 글씨도 선명하다. 오늘은 가슴을 내밀어 이름표를 받는 어린이 마음이다. 혼자서 세상의 골목을 뛰어다녀도 혹시 길을 잃어도 내 이름표를 보고 무사히 귀가시켜 줄 어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 동안 수많은 낮과 밤을 시 쓰는 일에 매달려 왔다. 시의 행간을 따라가는 일이 기쁨보다 고통이 더 컸다. 시를 쓴다는 일이 녹녹하지 않았음이다. 시상을 정리하고 시어를 선택하여 행간을 고른다는 것은 전업 작가에게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으리라. 내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평생교육원이나 문학교실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 시가 선무당 사람 잡는 일은 아니었는지 늘 뒤돌아보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오면서 동시를 읽고 지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와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시를 읽고 쓰고 고치는 일에 마음을 줄 수 있었다. 교사라고 하는 직업이 결국 나를 여기가지 데리고 온 셈이다.
가끔 보탬도 되지 않는 짓을 하느냐는 아내의 말이나 시 같지도 않은 시라고 혹평을 받을 때면 정말 나는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반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약 같은 중독의 유혹과 시의 매력에 빠져나오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신춘문예 당선이야 말로 앞으로는 혼자서 글을 써도 좋다는 이름표라고 나름대로 정의하면서 이름표 값을 해야겠다.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강단할 때가 다가온다. 그 동안 수없이 쳐 보내던 종소리도 여운만 남긴 채 허공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종은 찌그러져도 종소리만은 오랫동안 깨지지 말고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내 시를 어여삐 봐주시고 선해 준 창조문학신문사 심사위원과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이제 출발선 상에 있는 마라토너가 된 기분이다. 시의 길은 멀고 해는 지고 있다. 가다가 쓰러질 때 까지 시를 끌어안고 갈 것이다. 기축년 새해에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골고루 비치기를 바란다. 어둠이 있기에 맞이하는 아침이 경이롭다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
2009년 01월 01일
2009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정성수 시인
[프로필]
전북 익산 출생.
「학력」
원광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동 교육대학원 공업교육.
전주교육대학교, 동 교육대학원 상담교육.
「시집」
창 외 「동시집」학교종 외
「산문집」
말걸기 외
「실용서」
글짓기, 논술의 바탕 외
「수상」
제11회 공무원문예대전 동시 부문 국무총리상 및 수필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제3회 전북교육대상.
제24회한국교육자대상.
제5회한국농촌문학상.
제18회세종문화상.
제15회교원문학상.장관상.대통령상 수상 외 다수
․ 홈페이지 : www.jung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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