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내가 너를 부를때>님의 카페에서
새 / 고경숙
내 족속이 그리운 날은
무제한으로 고도를 높이고 바람을 탔다
내 몸을 힘차게 때리며 퍼덕일 때마다
수평이동은 곧 수직으로 바뀌어
가쁘게 숨을 내쉬다 보면
어느새
시간 속을 날기 일쑤였다
억겁을 날아 차가운 얼음별에 당도하면
진화 중인 내가 거기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막막했다 사방은
매끈한 깃털 하나 뽑아
운석 위에 이름 석 자를 적기로 했다
텅 빈 뼈마디가 공명했다
비로소 내 목소리가 주어졌지만
울음소리는 작고 짧아서
나를 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래 지체할 수는 없었다
강력한 기류에 몸이 얹혀져
고도를 바꾸며 날 때마다 허공에 길이 생겼다
내 몸이 음표처럼 악보를 그렸다
그건 운명과는 또 다르게 나를 자극했다
멀리 인간의 마을이 보였다
인기척 없는 공간 속 행보를 들키기 싫었다
물가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다
피돌기를 잠시 멈추고
유전자를 재배열했다
* 고경숙 시집『 달의 뒤편 』(2008,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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