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새 / 고경숙

자크라캉 2009. 1. 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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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가 너를 부를때>님의 카페에서

 

/ 고경숙

 

 

내 족속이 그리운 날은

무제한으로 고도를 높이고 바람을 탔다

내 몸을 힘차게 때리며 퍼덕일 때마다

수평이동은 곧 수직으로 바뀌어

가쁘게 숨을 내쉬다 보면

어느새

시간 속을 날기 일쑤였다

 

억겁을 날아 차가운 얼음별에 당도하면

진화 중인 내가 거기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막막했다 사방은

매끈한 깃털 하나 뽑아

운석 위에 이름 석 자를 적기로 했다

텅 빈 뼈마디가 공명했다

비로소 내 목소리가 주어졌지만

울음소리는 작고 짧아서

나를 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래 지체할 수는 없었다

강력한 기류에 몸이 얹혀져

고도를 바꾸며 날 때마다 허공에 길이 생겼다

내 몸이 음표처럼 악보를 그렸다

그건 운명과는 또 다르게 나를 자극했다

 

멀리 인간의 마을이 보였다

인기척 없는 공간 속 행보를 들키기 싫었다

물가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다

피돌기를 잠시 멈추고

유전자를 재배열했다

 

 

 

* 고경숙 시집『 달의 뒤편 』(2008,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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