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아들에게/ 최하림

자크라캉 2009. 1. 22. 12:51

 

사진<설빔에관하여>님의 블로그에서

 

들에게 / 최하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간들을 본다
아무 생각없이, 고통스럽게
지나가버린 시간들
다시 잡으려 해도 소용없는
시간속으로 나는 되돌아 갈 수 없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찾을 수도 없다
변해버린 사람과 깨어진 사랑
속에서 나는 걸음을 옮겨야 한다
남루한 저고리를 걸치고 모자를 쓰고
물푸레 나무 우거진 길로, 물 속으로,
이슬비 내리는 둑에서 나는 보아야 한다
     
  (중략)

비내리는 둑에서
나뭇잎들은 푸르고
산색은 살아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슬픔 기쁨
으로 밤을 걸어 가고 가끔 불켜진
창을 올려다보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날이 깊어 간다 모든것이 변하고
모든 기억이 희미해지고 모든
사랑이 딱딱한 사물로 변해간다
내 손에서 따스했던 네 손이 사라진다
이제 나는 잃어버리게 될 시간들
을  생각하고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시간속으로 들어 간다 물푸레나무가
우거져 있다 시간들이 우거져 있다 


(최하림 시집: 속이보이는 심연으로,2001, 문학과지성)
 

[감상]


아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성찰이 녹아 있는 시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시간, 젊음,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간절하게 묻어 난다. 그냥 술술 읽힌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기억은 희미해지고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어느 날 딱딱한 사물로 변한다”. 내 앞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한편의 수채화 같은 시다. 당신과 나 앞에 물푸레나무처럼 무성한 시간, 우거져 있다.        (김성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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