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 詩

가죽나무 / 도종환

자크라캉 2008. 12. 2. 13:19

 

사진<향기로운 세상>님의 카페에서

 

죽나무 /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직선」(창작과 비평)

 

 

중국이 원산지이고 껍질을 벗긴 뿌리를 말려서 한방에서는 이질, 치질, 장풍의 치료에 처방하기도 하며 이질을 앓을 때나 위궤양에는 뿌리를 진하게 달여 먹기도 하는데 참죽나무처럼 향기나는 어린 순을 먹을 수가 없어서 가짜 죽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가죽나무.


성장속도가 빠르며 대기오염에도 잘 견딘다는 가죽나무. 곤충이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땅의 종류나 비옥, 습지 관계없이 잘 자란다는 가죽나무. 가중나무라고도 불리우며 수나무에 피는 꽃은 역겨운 냄새가 나고 상처가 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는 가죽나무.

 

별 쓸모가 없어 베일 염려가 없다는 가죽나무에게 숲이 모두 제 것인냥 밋밋하게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이 돌아서서 조소를 보냅니다. 기대에 못 미친다고 비아냥거리고 조롱을 합니다. 가죽나무로서는 듣기 싫고 모욕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비판으로 알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 자기는 본래부터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는 않지만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자기도 기쁘고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족하며 자기는 못난 가죽나무이지만 누군가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봉사, 희생정신을 언제나 가지고 산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숲에는 잘난 나무도 못난 나무도 없습니다. 필요하지 않는 나무도 없습니다. 가죽나무도 숲의 일원으로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자기 나름의 몫을 하며 생존을 합니다. 가죽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고 드러내놓고 뻐기지도 재지도 않았는데 괜한 시기와 질시로 가죽나무의 마음을 언잖게 하고 자신의 체면을 꾸기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집 속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 고경숙  (0) 2009.01.19
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허청미  (0) 2009.01.08
귀뚜라미 / 나희덕  (0) 2008.12.01
1분, 혹은 2분 / 최형심  (0) 2008.11.25
아내의 빨래공식 / 이기헌   (0) 2008.10.28